기초반 팻말은 노란색이었다. 유치원에 입학하는 아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 사람들 틈에 끼었다. 잠수복을 입은 남자가 풍덩 소리와 함께 물안으로 뛰어들었다.
"기초반이시죠? 들어오세요!"
그의 말에 모두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발을 들였다. "앗 차가워" 20번의 돌림 노래가 끝나고서야 고요함이 찾아왔다. 웃고 있는 강사님의 소개와 더불어 같은 반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 샤워실에서 봤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빨간 입술의 그녀도 함께였다.
모든 사람이 일렬로 서서 기차를 만들었다.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 바퀴를 천천히 걸었다. 유치원에 온 기분이었다. 물속은 약간 차가웠지만 가슴 위까지 오는 높이로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접싯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 발을 헛디뎌도 죽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곳에 안전요원 두 분과 떼 지어 돌고 있는 고급반 회원들, 강사님들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물에 몸을 띄어본 적 없던 나에게 수영이란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날개와 엔진이 있어야 하는 비행기처럼 물에 뜨기 위해선 숨 쉬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양수로 가득 찬 엄마 뱃속에서 우리는 매일 수영을 했다. 내가 되는 씨앗이 만들어졌을 때도 나는 물속에 있었다. 1평도 되지 않은 캄캄하고 따뜻한 물 안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 안에서 울기도, 웃기도, 놀라기도 하면서 나를 이루는 무의식을 만들어 갔다. 나는 우주를 유영하는 작은 우주인이었다.
"물 안에서는 숨을 내뱉기만 할 거예요. 들이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해 보세요"
온몸이 물속에 잠기자 사방이 캄캄해졌다. 숨을 내 쉬는 순간까지 어둠에 잠겼다.
"다들 눈 뜨세요! 눈 떠도 안 죽어요!" 강사님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음---" 머금었던 숨이 방울방울 부풀어 나갔다.
마주 본 누군가에게선 작은 방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숨을 꾹 참고 있었다.
"위에서 보면 누가 참는지 다 보여요 지금 해 보지 않으면 몇 달 지나도 숨 쉬기 어렵습니다"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대부분 기초반은 맨 끝 레인을 사용한다. 20명의 사람들이 벽에 걸터앉으니 50m 수영장 절반이 꽉 찼다.
길게 늘어진 40개의 다리가 일제히 상하운동을 시작하며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켰다. 폭포 같은 소리가 수영장에 울렸다. 그 끝에서 강사님이 회원 한 명 한 명의 발 끝을 잡아주었다.
"엄지와 엄지가 스치듯이, 무릎을 곧게 펴고 힘차게 차세요"
익숙해졌을 때쯤 엎드려서 발을 찼다. 상체는 물 밖이라 호흡은 자유로웠다. 발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반쪽자리 발차기만 했을 뿐인데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시 물 안으로 들어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강사님이 무지개색 벽돌을 들고 나타났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킥판이었다. 앞 뒤가 비슷해 보였지만 비스듬하게 깎인 끝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턱받이처럼 생긴 것을 잡고 물 위로 몸을 띄웠다. 갑자기 모든 것이 한 번에 일어났다. 킥판에 온 몸을 의지한 채 호흡도 하고 발차기까지 하며 앞으로 나가야 했다. 하나씩 할 때는 잘했는데 종합 인간이 되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킥판은 내 몸을 받아내지 못했다. 아니, 내가 엄청난 힘으로 킥판을 누르는 통에 물에 뜨지 못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 쉬는데 급급했다. 한 방울의 물도 코와 입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공기방울 대신 숨을 참았다.
뒤에서 다리를 잡아주던 강사님은 "이 회원님 아주 장사시네! 힘 빼세요. 계속 그렇게 힘주고 있으면 더 물에 잠겨요"라고 말했다. 힘을 빼자. 힘을 빼자. 음-파, 음-파를 되뇌었지만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리 연습한들 숨이 쉬어질까 고민했다. 세 번도 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수업이 끝나고 한쪽 벽에 붙어서 수도 없이 머리를 담갔다 빼야만 했다.
시작은 늘 설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을 담가 보았기 때문에 절망도 쉬웠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절망을 끈기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수영을 잘하고 싶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일 수영장에 나오세요 그게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던 잠수복을 입은 남자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