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야,
너한테는 할 말이 많다.
잠귀 밝은 사람 몸에 붙어있는 바람에 밤새 귀마개에 막혀 있다가, 아침에 숨 좀 쉬어볼까 하면 또 산책 나간다고 귀에 음악 나오는 뭔가를 꽂아대질 않나,
한낮에 산책 나갈 땐 에어팟 꽂은 채 선글라스도 짊어 메야하고, 선글라스 땀에 미끄덩하면 헤어밴드로 고정하느라 밴드에 눌려 있어야 하고,
가끔 특별한 날엔 귓불에 난 구멍에 무거운 금속도 주렁주렁 달아줘야 하니
여러모로 애잔하다.
지난주 사막에선 귓속에 모래바람, 따가운 태양 다 감내하고 도마뱀 도망가는 소리도 들려주고, 집으로 오는 오르막길 내리막길 기압차도 군말 없이 조절해 줬지.
청소년기 수많은 불면의 밤들을 너와 이어폰 없이 어떻게 이겨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구나.
이렇게 한 없이 받기만 하니 내가 귀 달린 존재로 밥값을 하는지 저절로 묻게 돼.
너도 알겠지만 요즘 나는 와인잔 놀이에 빠져있거든.
'쨍'하고 부딪힐 때는 쨍과 내가 둘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듣고 있던 나만 남는 거야.
소리는 내 귓속으로 들어와서 내 안의 귀를 켜 놓고 사라지지.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 내 안의 귀에 귀를 기울여.
자기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겠지.
하루에 한 번, 혹은 그게 기본값인 사람도 있고 일 년에 한 번 오는 사람도 있고.
내 경우를 돌아보면, 확신이 없어서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일수록 구하지 말아야 했던 것 같아. 어떻게 할지 남에게 물어보고 싶은 상태는 결핍의 증명이고, 그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지 못했어. 그럴 때 자꾸 남에게 물어봄으로 불안을 덮어버리기보다는 내 안의 귀를 켜는 편이 나은 것 같아.
마지막으로 내가 귀 켤 때 쓰는 만트라 하나 말해줄게. 근데 이게 다른 사람들도 될지는 모르겠어. 자기 만트라는 자기가 찾아야 하니까.
그래도 말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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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찌야,
니 귀 항상 켜져 있잖아.
켜긴 뭘 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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