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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Dec 21. 2023

의식

잠-꿈-깸





가끔 운수 좋은 날이면,

잠-꿈-깸 사이를 날아다니는 생각 자락을 아침 커피 테이블까지 데려올 수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이런 생각들은 고양이처럼 따라오라 해도 잘 안 오고 숨는 걸 좋아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잠-꿈-깸을 통과해 가며 쫄래쫄래 따라 나오더니 지금 랩탑 옆에 앉아 식빵을 굽기에 이르렀다.


눈을 껌뻑껌뻑, 꼬리도 까딱까딱,

도망 안 가고 있을 테니 한번 그려보라며.


요물이다.

이렇게 대 놓고 써보라 하면 못 쓸 줄 알았지? 나도 요물이다, 이것아.




조그만 방에 세 존재가 보인다.


나, feel, 느낌.


'나'는

영어단어 'feel'과 우리말 '느낌'을 불러다 놓고 뭐라 뭐라 위로하는 중이다. 너네들처럼 오해받는 단어가 어딨겠냐며... 두 단어를 끌어안고 등을 톡톡 두드리자 feel이 말했다.


"괜찮아요.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그러자 느낌도 말했다.


"맞아. 아찌 너는 그런 생각하면 살기 힘들어. 너라고 오해 안 하는 줄 아니?"


그러자 feel이 뭔가 생각난듯한 표정으로,


"아찌님! 사람들이 'feel like it'이라는 표현 쓰잖아요. 그거 왜 그런지 아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뭔가를 '하고 싶다'라는 말을 영어로 'feel like it'이라고 하잖아요."


"응, 근데 원래 모양은 'feel like (doing) it' 이잖아. 그렇다고 하자. 그래서?"


"그게 사실은... 니가 '뭔가가 하고 싶다'는 건, 너의 'feel'이 'it'의 상태와 같아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와 같은'의 역할을 하는 'like'가 중간에 있는 거고요. 너의 'feel'이 'it'과 '같아'진 상태요. 그래서 '그게' 하고 싶은 거예요."


"아... 지금 영어 얘기가 아니구나. 계속해 봐."


"그 상태가 자주 오진 않거든요. 그래서 뭔가가 '해보고 싶은 마음'은 당신만의 'it'으로 향하는 길이예요. 근데 이런 마음들도 생멸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너무 미루면 안 돼요."


'느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받아친다.


"어차피 다 공한 거야. 너는 뭘 너무 해보려 해서 탈이야."


"어차피 다 공하니까 뭐든 해보는 거죠. 공하면 공한거지 왜 그게 '소용없음'으로 결부되는 거죠? 땅에 민들레 보세요. 어차피 공할 거 알면서 얼마나 민들레 해요?"


식빵 굽던 고양이가 살모시 일어나더니 창문 밖으로 달아났다.


잠결에 들으면서도 속으로 '와... 얘내들 봐봐 너무 재밌어. 어디서 나온 거야...?! 이따 깨서도 기억하고 싶다. 아니, 기억하고 싶다 하면 사라지니까 그냥 이자뿌리자. 아니야 그래도 기억할래...' 어르고 달래서 겹겹이 통과시켜 끌고 나온 고양이.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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