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CI Jan 01. 2024

나의 불안 해방기

八識





새해가 왔습니다.  


새해 헌해가 어딨어 할지도 모르지만 이왕 온 거 즐거이 맞아 줍니다. 저는 남편과 사이좋게 독감에 걸려 지금 블러드 오렌지와 사과를 넣은 뱅쇼를 홀짝대고 있어요. 발가락 끝부터 뜨뜻해지는 것이 참 좋네요.


새해를 열면서 어떤 말을 해 볼까 싶다가, 세상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저처럼 온통 예민한 사람이 어떻게 불안지수가 낮은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조금 드리고 싶어요. 일단 제가 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감사를 표해야 할 분이 있으니, 바로 숭산스님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이거든요.


스님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딱히 불교적일 건 없습니다. 그냥 인간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죠. 불안을 이겨내는 다양한 방편이 있겠으나 저에겐 이게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오직 모를 뿐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하고 산책을 합니다. 앉아서 각 잡고 하는 명상이나 기도도 좋지만 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걷기를 선호합니다. 방식은 자기가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내가 텅 비워지는 느낌의 지점에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그 지점에 충분히 머물다 나옵니다. 거기 들어갔다 나온 나는 더 성실하고 착하고 지혜롭고 사랑스러워져 있습니다.



오직 할 뿐

하면 재밌는 것들, 혹은 해야 할 일들을 그저 합니다. '잘, 열심히' 이런 생각 없이 그냥이요. 설거지하면서 '저녁엔 또 뭐 먹지?'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릇들을 바라보고 물의 온도를 느끼고 그릇들이 내 손길로 깨끗해 지는 걸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영상 콘텐츠 만드는 데 푹 빠져있어요. 처음이라 서툴지만 행복합니다. 내가 재밌어서 뭔가를 만들어내면 누군가는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영감을 받거든요. 그래서 내가 만들어 내는 것들의 기질을 맑게 하기 위해서 '오직 모를 뿐'을 먼저 합니다. 이건 핸드폰 충전하듯 수시로 합니다.



불안구간 파악하고 피하기

저는 '오직 모를 뿐'과 '오직 할 뿐'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구간의 행위를 최소화합니다. 그 구간의 행위가 불안을 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게 뭔지는 스스로를 잘 살펴보면 알아챌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언제 불안한지, 언제 희열이 올라오는지 같은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저는 오직 모를 뿐을 통해 채워진 힘으로 오직 뭔가를 합니다. 그리 살다 보니 저 깊은 바닥 의식이 맑아짐을 느꼈어요. 그 자리가 맑아지니 세상에 불안할 일이 없음을 알게 되고, 지극히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들에 감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나 하나 이렇게 불 켜고 깨어 있으면 주변도 밝아지는 걸 느끼고요.


그래서 저는 새해에도 언제나처럼 오직 모르고, 오직 하는 삶을 살아볼까 합니다.



이전 07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