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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Dec 30. 2023

七識




집에 왔다.


이미 여러 번 말한 것 같지만 

내게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길에서 보았던 모든 색, 냄새, 온도가 집에 들어설 때 한층 다른 의미로 자리 잡고 '어차피 집에 오려고 떠나는 것'이라는 말에 새삼 끄덕인다. '그럼 어차피 집에 올 거 집에 가만있으면 되겠네?' 할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역시 집에 가만있으면 안 되겠네'로 이어진다. 


'떠나는 행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집 안에서도 떠날 수 있긴 하다. 고수하던 고정관념 하나를 깬다던지, 집 안에서도 평소 잘 머무르지 않는 곳에 있어 본다던지 하는 것들. 나를 나로부터 소외시키는 모든 행위가 내겐 '떠남'이다. 


나는 '이게 나다'라는 생각이 쌓이는 느낌이 싫어서 - 동시에 좋아도 한다는 게 웃김 - 자꾸 이렇게 떠난다. 깊고 가볍게 살고 싶다. 그리 되도록 매일 분투한다. 분투라는 단어는 그렇게 무서운 단어는 아니고 '안으로 닦는 것'이다. 수심修心, 혹은 지하드(jihad جهاد 통상적으로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뜻으로 확대오용되지만 사실 아름다운 말) 같은 것이다. 내 안의 신성과 합일하기 위해 매일 깨어있는 것이다. 나는 지눌의 <수심결>을 좋아한다. 너무 재밌다. 보는 사람 이해 잘 되라고 노파심 듬뿍 담아 쓰신 것 같다.


내가 '지하드'같은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편감이 올라오는 분들은 미국 편익 위주로 돌아가는 미디어의 생태를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군산복합체 같은 단어들도 살펴보면 좋다. 이런 것들을 생각 안 하고 자신의 일상에만 매몰되다 보면 엉뚱한 희생양이 발생한다. 자기 마음으로 생각 안 하고 캔슬컬처 같은 것에 휘둘리는 것. 너무 허망하지 않나. 


내가 아는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나를 소외시킨다. 나는 한국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키고 한국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안에서는 헬조선이라 부르지만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지금 당장 알아지지 않는 것들에 안달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건 자기 삶을 불신하는 행위다. 나는 나보다 내 삶을 더 믿기에 그냥 적기에 알게 해 주겠지 하고 마음 푹 놓고 산다. 걱정하거나 불안할 게 없다. 그때그때 그냥 하고 싶은 거 한다. 


걱정이 올라오면 현재 역량에 맞지 않는 욕심이 올라왔다는 증거다. 바로 욕망을 수정한다. 나는 수정주의자다. 한결같지 않다. 나는 내 안에 한결같은 무언가에 기대긴 하지만, 몸 입은 나는 자이로스코프처럼 매 순간 다르게 중을 잡아나가야 하므로 한결같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


연말은 항상 과도한 관계 맺음으로 인해 심신이 탈탈 털리지만 그만큼의 정화작용도 일어난다. 내 안에 나 말고 남을 담아서 그런 것 같다(남을 '위한다'는 생각 없이 그냥 담는 거). 매일 패들링 가는 습지에 폭우가 내린 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습지는 자기 안에 자기 말고 비바람을 품고 나서 맑아져 있었다. 


면우 곽종석 선생이 쓰신 <이결>에 보면 '기품지성', '기질지성' 이야기가 나온다. 전자는 나만이 지닌 개별적 아름다움, 후자는 그것을 어떻게 맑게 닦아 나가느냐에 관한 것이다. 


내 기품지성은 담쟁이나 칡넝쿨이다. 초여름 초록색이고 나무고 끈질긴 생명력이다. 뭘 자꾸 만들고 드러내야 무탈하다. 그걸 맑게 잘 닦아서 온전한 칡넝쿨이 되려고 오늘도 귀찮지만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간다. 




일주일정도 요세미티와 시댁에 있다가 돌아왔어요. 새해를 맞이하여 청정한 요세미티의 기운을 나눠드리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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