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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08. 2024

완벽은 없다

매몰과 열림




통역이 망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건 완벽주의에 걸려 넘어지던 일이다. 대부분의 날들은 무난했으나 가끔 컨디션이 엉망인 날은 넘어진 것도 모자라, 그것에 대한 곱씹기가 시작되었다.


'으이그... Headmonk가 아니라 Abbot이잖아... 사람들 얼마나 헷갈리겠어. 어떡해!'


저 정도면 4절까지 나갔다고 보면 된다. '으이그'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고 그 자릴 떠나야 한다. 가끔은 적확을 버리고 맥락만 취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바로 털어버리고 ‘지금, 지금, 오로지 지금’만 한다.


완벽주의는 자의식을 향한 매몰이다. 그때부터는 메시지의 경중 파악이 되지 않고, 말을 들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못했다는 생각', '잘했다는 생각', 둘 다 같은 매몰을 일으키고 후자의 여파가 더 길 때가 많다.


매몰은 닫힘이고 고립이다. 거기서도 영감은 솟지만 무겁고 탁하다. 그래서 나는 통역을 하면서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상태가 여러모로 위험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일상에서 더 유효했다.


엊그제는 미국에 와서 인연이 된 한 스승의 추도식이었다. 행사 통역을 미리 부탁받고 간 자리였지만 내심 불편했다. 나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 푹 놓고 스승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 무엇보다 통역을 할 만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도 잠시, 막상 현장에 도착하자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습관이 올라왔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고, 의미 전달을 완벽히 해 내고 싶은 몹쓸 욕망이, 매몰로 가는 마음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마음을 의식적으로 내려놓고 그냥 스승에 대한 감사로 마음을 채웠다. 그 순간 그것이 알아차려진 것이 참 다행이었다. 이게 되면 그때부터 통역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된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잘한 통역은 통역사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통역이다. 말을 옮김에 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 그래서 통역을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되는 날은 아무도 나에게 '통역 정말 잘하시네요.'라고 하지 않았다. 통역사가 진정으로 그 자리에 없을 수 있을 때, 깨끗하게 양방향 소통이 성립한다.




다 끝나고 밥을 먹는데 서너 살 무렵의 여자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애기라고 다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 여자 아이는 매력이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팔을 벌림과 동시에 그 아이가 내 품속으로 달려와 안겼는데 신기하게도 그 장면이 매우 느린 속도로 내 눈앞에 재생되었다.


'우와. 진짜 짜릿하게 생겼다. 빛이 난다. 솜사탕 속에 들어온 거 같애. 아니야 무지개구름이야. 여튼 탈인간계군. 길냥이 간택보다 100배 설렘... 우와.'


행사장이 산 중턱이라 칼바람이 불었는데 그 아이로 인해 갑자기 심장에 훈풍이 훅- 하고 들이닥쳤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내 몸에 그런 게 불어닥쳤다.


자신을 활짝 열어놓고 돌아다니는 작은 한 인간이 일으킨 바람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도, 그 다음 날도, 오늘도 떠나지 않고 나를 감돌다 기어코 이렇게 글까지 쓰게 만들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대단한 가르침이다.


더 많은 인간들과 이러고 놀고 싶다. 더 많은 인간들을 만나서 두둥실 손잡고 딩가딩가 춤추고 그러면 좋은 삶이 될 것 같다. 내 모든 앎을 향한 움직임은 결국 타자와의 어울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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