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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May 10. 2024

시시하고 하찮은

德澤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들면 사는 게 덜 힘들어. 덜 힘들다기보다는 사실 나는 그게 다라고 생각해. '내가 나를 봤을 때 마음에 든다.' '부족함이 없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거기 가려면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 끊임없이 세상과 수작하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다 보면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가 나오면서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것 같아.


남과의 비교로 인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길에 대한 앎이 부족할지도 몰라. 자기의 길을 알고 걸어내는 사람의 마음에는 그런 게 없어. 그냥 '이게 내 길이라 다행이다. 감사하다.' 정도랄까.


사람은 누구나 생사를 오가는 방황을 한 번은 하게 되어있고, 주위 사람들이 알건 말건 우울증도 여러 번 걸릴지 몰라. 이 시기가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수시로 찾아오는 우울의 감정들을 폭넓게 해석할 수가 있어.


해석은 해방이야. 해방은 책만 보거나 명상, 기도만 해서는 얻어질 수 없는 거야. 인간은 삼간三間의 존재거든. 세 가지 사이에서 산다는 말인데,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사는 거지. 그 삼간의 경험을 골고루 다양하게 많이 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선후, 본말, 경중 구분이 쉽게 되고, 삶은 점점 더 단순하고 아름다워져. 시시하고 뻔한 것들에 이끌리게 돼. 이를테면 고전 같은 거,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말들 있잖아.


그래서 아찌는 작년에 우연히 요가수트라를 보다가, 내용이 이결이랑 비슷해서 이결을 또 보다가, 수심결을 보다 계사전을 보다 지금은 역경을 보는 중인데, 정말 너무 진부한 말 밖에 없어서 자꾸 무릎을 치게 돼. 무릎을 자꾸 치다가 거기 나오는 말들이 너무 시시하고 뻔해서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어. 


시시하다: 신통한 데가 없고 하찮다.
뻔하다: 어두운 가운데 밝은 빛이 비치어 조금 훤하다.


아찌는 신통한 거 싫어하거든. 하찮은 거 좋아하고. 아니, 어두운 가운데 밝은 빛이 비치어 조금 훤하다는데 안 좋아할 수가 있어? 그래서 이 시시하고 뻔한 것들을 주제로 연말에 전시를 할 계획이야.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요가수트라의 결말을 보고 싶거든. 내 인생에 위대한 것들은 아무 생각 없는 곳에서 나온 적이 많아. 그리고 책을 봤으면 간서치로 남지 말고, 사람 사이에서 뭔가를 함께 만들어내면 좋아. 상상치도 못한 좋은 일이 벌어질 거야.


금가루처럼 반짝이는 나의 조카들아,

응원한다.

사랑한다.




64 Hexagram Series #46 地風升, 140cm x 100cm(좌), 64 Hexagram Series #24 地雷復, 140cm x 100cm(우) 캔버스에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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