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초록 들판에서 오더라 - 소설

나도 그곳을 본 적 있어. 아니 사실 난, 매 순간 그것을 보는 동시에 보지 않더라. 난 쉼 없이 걷기 때문이야. 난 언제나 그곳의 옆구리를 스쳐 걷는걸. 덕분에 언제나 그 언저리에 있지만, 없기도 한 거야.


그곳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알 수 없지만, 당연히 있는 다른 장소들과 같아. 다만 그곳은 싱그럽지. 그 옆구리를 지날 때, 난 나의 걸음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싱그러워졌어. 난 가능한 한 오래 머물려했지. 그리고 그곳은 나의 머묾을 유일하게 안아준 곳이야. 난 싱그러움을 넘어선 따스함을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어.


저 멀리서 대책 없이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는, 분명히 그곳에서 왔을 거야. 처음엔 지평선 너머의 하염없는 점일 뿐이던 아이가 이젠, 그곳과 같은 색을 빛내고 있네. 아이는 날리는 나뭇가지의 옷을 휘두르고 있어. 옷을 입었다기보단, 나뭇가지에 푸른 잎들이 나듯, 아이가 포장된 것만 같아. 아이의 미소는 그곳의 싱그러움을 닮았어. 이유가 없는 듯 있는 그 따스함이, 아이의 웃음에서 피어나고 있네. 아이의 긴 머리는 자신의 바람을 따라 휘날리며, 그 짙은 갈색빛을 싱그러움과 짝지어 발사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난 금방, 아이를 걱정하게 되었어. 아이는 이 검고 찬 땅에 맨발로 맞서고 있어! 언제나 그래. 아이는 분명, 알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 거야. 아이는 그곳처럼 머무르는 존재야. 그래서 이 차디찬 바닥을 몰라. 아이는 그곳처럼 상처 입는 존재니까······. 그래서 이 바닥의 가장 약하고 만만한 먹이가 되어버려. 맞아, 그곳은 초록 들판이야······.


‘그 빛을 잃는다. 언제나 그래······.’


아이의 긴 머리칼과 야위진 않았지만 가는 몸매에, 여자아이가 달려오고 있단 걸 알았어. 참 애석하게도 난, 그 아이를 더 걱정하게 되었지.


‘한눈에 만들어지는, 타인에 대한 잣대라니······. 어디서부터 구분이라는 것이 시작된 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차이를 없애려는 책략은 아닐까? 분명한 건, 많은 사람이 이것으로 아프게 살아가······.’


차츰차츰 찾아오는 이런 소리······. 난 세상을 왠지 모르게 알아버리곤, 이 소리를 피해 갈 수 없더라. 이상하게도 이 소리에, 오히려 내 마음이 풀려나기도 해. 그래서일까? 난 아이의 성별을 단정하기 어려워졌어. 다시 보니, 아이는 상당히 중성적인 느낌이야. 너무 어리기 때문일까? 정말 중성적인 존재여서 그런 걸까? 아이는 다부진 소녀이기도 귀여운 동자이기도 한 것 같아. 아무튼 난, 아이의 순수한 기쁨과 흥분 그리고 따스한 녹색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아! 묘하게 아이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 아직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 왜 뭔가 위험하다고 털끝에서부터 느껴질까······?


‘난 아이가 무서워······.’


“레~카~!!!! ······.”

????

“유↗레→카↘~!!!! 후후후!”

아이는 이상하게 익숙한 말을 얕게 굴러가는 웃음소리 삼아, 달려오고 있었지. 내겐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가오는 공포감이었어.


난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무조건 공포부터 느끼는 아이였어. 왜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보면, 내 일상을 일그러뜨릴 방해자라고 생각해 버리는 걸까? 아직은 알 수 없어. 분명한 건, 내가 남에게 언제나 불편함을 느낀다는 거고, 계속 이대로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 그 이유도 알아낼 거란 사실이야.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해 버리는 거 같아. 아이는 지평선 너머의 점(나)에 관심을 보였어.


(중략)


아이는 날 보자마자 우뚝 멈추더니, 어떤 말도 없이 내게 달려오고 있어. 분명 그건 최고 속도였어. 아이가 전에 없을 정도로 빠르고 무섭게 다가오고 있어. 그것도 옅지만 분명하게 웃는 얼굴로······.


그녀가 그림자만큼 가까워졌을 때, 난 이 익숙한 타인에의 공포를 또 느끼고 말았지. 아니 근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그녀는 콧소리로 너무나 명랑하게 웃고 있는 걸. 또,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 밝은 얼굴에 한 점 흐트러짐도 없다니······. 마치 인생에 한 가지 목표만 있는 무언가가(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게 쉼 없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그녀의 모든 행동이 나에게 뭔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있어. 난 이 모든 두려움에 온몸이 굳어버렸지. 난 도망칠 수도 없었고······.


어느새 아이가 코앞까지 왔어.


(중략)


헝클어진 머리칼은 묘하게 자연스럽기도 했어. 그녀의 피부는 조금은 그을린 것 같아. 몸에서는 얕게 판 풀밭의 흙처럼, 싱그럽고 정겨운 냄새가 나고 있었고(물론 이것도 하나의 공포 포인트이긴 해). 그녀의 몸을 감싼 나뭇잎은 윤기를 마음껏 뽐내며 아이를 지켜내고 있었어(여기도······). 발은 맨발이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네. 하지만 검은 대지에 선 아이의 발을 난, 연약하게 바라봐야 했어.


(중략)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이 불편한 순간을 모면하고, 다시 혼자라는 완벽함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예 모른 척해버릴까? 안 보이는 척하는 거야! ······. 말이 되냐······. 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라보는 저 눈의 똘망똘망함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난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래, 일단 눈이라도 피해!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지만, 언어로 표현한 나의 두려움이, 너무 부족한 녀석이란 걸 알아야 했지. 아니, 이 도구론 전혀 나의 두려움을 나타내지 못하더라. 이건 오히려, 나의 두려움을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해. 내 두려움이 그렇게나 복잡한 거야? 아무튼, 항상 언어가 문제야. 너무 화가 날 정도로 불완전해. 너무나 미약해. 하지만 동시에, 그게 좋은 거야.


‘언어는 현상을 향한, 사회적 비웃음 같아······.’


아무튼 난 그녀의 눈을 피해야 했지. 하지만 소용없어. 그녀의 눈은 내 눈이 가는 곳을 쫄망거리며 잘만 따라왔지. 분명히 내 쪽이 키가 큰데도, 그녀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서로 마주치게 되는 거야! 이럴 땐 이 세상에 물리법칙 따위 없는 것만 같아. 그렇게 눈들의 쫓김이 몇 번 반복되자, 아이는 멈췄던 웃음을 조금씩 퍼트렸고, 결국에는 순식간에 내 손을 모아 잡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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