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아내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맥주 한 캔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서로의 온도를 다시 맞추는 소중한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생긴 것이죠.
기쁨도 잠시, 우리 부부는 작은 고민에 부딪혔습니다.
“이제 맥주 한 캔도 안 되는 걸까?”
“논알코올 맥주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질문은 단순히 음료를 고르는 문제 같지만, 아이의 건강이 걸려 있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의사가 아닌 한 아이의 아빠로서 여러 자료와 연구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논알코올’이라는 이름이 꼭 ‘알코올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주류법상 도수 1% 미만은 ‘비알코올 음료’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시중에서 ‘논알코올 맥주’라고 팔리는 제품들 중에는 알코올이 0.5% 안팎으로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알코올이 0.00%인 제품을 찾으려면, ‘무알코올’, ‘제로 알코올’, ‘0.00%’라는 표시가 명확히 있는 제품을 골라야 합니다. 혼동하지 않도록 꼭 확인이 필요합니다.
임신 중의 음주가 태아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임신 사실을 몰랐던 산모가 음주 후 뒤늦게 임신사실을 알고서 크게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음주까지가 안전하고 어디서부터 위험한지에 대한 과학적인 명확한 기준은 없는 상태입니다.
의학적으로 '안전한 음주의 수준이라는 것은 없다.'가 지금까지의 명확한 결론입니다.
즉, “한 모금 정도면 괜찮다”거나 “이 정도면 큰 문제는 없다”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연구에서도 임신 중 소량의 알코올조차 태아의 뇌 발달, 인지 기능, 행동 문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신 중 음주를 했다고 무조건 태아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단 한두 번, 임신 초기의 제한된 음주로 인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음주를 피하고, 건강한 임신을 위한 선택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임신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술을 마신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자책하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태아의 건강을 위해 알코올을 완전히 끊는 실천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임신 중 알코올 섭취는 심각한 기형을 유발하는 등의 영향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의 두뇌 발달과 지능, 언어 능력, 집중력, 문제 해결력 등 전반적인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대규모 출생 코호트 연구(ALSPAC)에서는 임신 초기에 알코올을 섭취한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IQ가 유의하게 낮은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또한, 태아의 특정 유전자형에 따라 알코올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밝혀졌습니다.
이 밖에도 다른 여러 연구들에서 임신 중 소량의 음주도 작업 기억, 언어 발달, 주의 집중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즉,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아이'를 출산하더라도, 인지적 취약성이나 발달 지연이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산모의 음주가 반드시 아이의 지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위험성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조금의 음주도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문제는 바로 태아알코올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 FAS)입니다.
이는 산모가 섭취한 알코올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며, 태아의 뇌와 중추신경계 발달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선천성 질환입니다.
태아는 아직 간 기능이 미숙해 알코올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아주 소량의 알코올이라도 태아에게 직접적인 독성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지요.
FAS는 다음과 같은 증상들을 보일 수 있습니다:
얼굴 기형 (인중이 평평하고 윗입술이 얇음, 눈 사이가 넓고 눈이 작음)
출생 전후 성장 지연
뇌기능 장애 (학습장애, 주의력 결핍, 사회성 부족 등)
특히 뇌 발달은 임신 전 기간에 걸쳐 지속되기 때문에, 임신 중 어느 시점이든 알코올은 위험합니다.
우선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알코올 섭취 자체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임신을 준비 중인 산모라면 임신가능 기간에는 음주를 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면 "0.00%" 제품을 고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무알코올 음료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술과 맛과 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실제 음주로 이어질 위험성이 올라간다는 점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알코올을 먹지 않겠다는 정신적인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죠.) 그래서 임신기간에는 가급적 술을 멀리하고 비슷한 무알콜 맥주라도 먹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Caballeria, E., Pons-Cabrera, M. T., Balcells-Oliveró, M., Braddick, F., Gordon, R., Gual, A.,... & López-Pelayo, H. (2022). “Doctor, can I drink an alcohol-free beer?” Low-alcohol and alcohol-free drinks in people with heavy drinking or alcohol use disorders: systematic review of the literature. Nutrients, 14(19), 3925.
Lewis, S. J., Zuccolo, L., Davey Smith, G., Macleod, J., Rodriguez, S., Draper, E. S., ... & Gray, R. (2012). Fetal alcohol exposure and IQ at age 8: evidence from a population-based birth-cohort study. PloS one, 7(11), e49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