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다시 편의점 앞에서 멈춰 섰다. 습관처럼 먹었던 빵을 끊었건만, 빵은 자꾸만 나를 부르고 있다. 그 달콤한 유혹은 언제나처럼 강렬했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은 늘 그렇듯 나를 배신했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결심을 깨고 마는 걸까?
우.아.하.게.
빵을 조금씩 찢었다. 양손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이용해서 천천히, 흐물거리듯 느림보처럼 찢었다. 목이 메일듯하여, 미지근하면서 연한 (누가 봐도 맛없어 보일듯한) 알땅커피를 함께 마셨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혀 위의 빵들이 눅눅해졌다. 달콤함이 배가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테이블 위에는 빵 부스러기들만이 볼품없이 누워있다. brain은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목구멍 뒤로 가슴 어딘가에서 자꾸만 탕탕탕 친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이러지 않았짜나!’ 소리치는 것만 같다.
미안하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빵을 다신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다짐을 수정했다. 목표치에 다다를 때까지만 빵을 먹지 않겠다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이 말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때때로 우리를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유혹과 맞서 싸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휘둘린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휘둘리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다이어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빵을 참아내는 것은 어쩌면 휘둘리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작은 눈속임에 넘어가는 것은 때로는 휘둘려도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부모는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한다. 이런 휘둘림은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은 때로는 휘둘림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반면, 연인 사이에서의 휘둘림은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은 휘둘림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위한 배려와 이해가 아닐까?
일상의 작은 선택들 속에서도 우리는 늘 휘둘릴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휘둘려도 괜찮은지, 언제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작은 유혹에 휘둘려도 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명확히 아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결국,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유혹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만이 진정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자신을 지키는 힘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유혹에 대한 경계와 현명한 선택은 우리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을 찾는 길일 것이다.
그래! 나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고결하며 나의 가치를 스스로 쥐며 살아가는 존재다. 다시는 빵 따위에게 내 감정이 휘둘리지 않도록 나를 지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