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인연을 원인을 도와 결과를 낳게 하는 작용이라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옷깃을 스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0생이 걸린다고 한다.중요한 것은 어느 부분이 옷깃이냐는 거다. 옷깃은 소매나 옷 끄트머리가 아니다. 목의 앞부분, 가슴 쪽 옷을 둘러싸고 있는 부분으로 영어로는 컬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옷깃이 닿으려면 최소한 포옹 정도는 해야하는 관계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를 일생이라고 하니 누군가를 포옹하는 인연이 되려면 팔십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삼백을 곱하여 자그마치 2만 4천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므로 옷깃만 스치는 인연은 수만 년이 걸려 만나는 관계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모님이라는 인연을 필두로 가족, 친구 등 에서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연을 확장시켜나간다.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저절로 맺게 되는 관계들이다. 어린시절의 소꿉놀이 동무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창시절의 인연을 만들고 사회에 진출해서는 동료, 친구, 지인, 모임 회원 등 자신의 환경과 지경에 따른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인연의 끈들이 시간이 지나면 삭아서 끊어지거나 스스로 잘라버리거나 저절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동창들은 지금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며 심지어 대학동창들도 소식이 끊긴 이가 대부분이다. 환경이 바뀜에 따라 인연의 지경이 바뀌게 되는 이유는 현재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그렇다.
심지어 아름답던 인연이 서로 원수가 되는 악연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결혼을 하고 이혼한 부부라든가 서로 죽고 못살정도로 사랑하다가 헤어진 연인, 서로사이가 형제처럼 좋았다가 의절한 친구 등 많은 악연 들이 있겠다. 이런 것들은 일정한 시기가되면 은연 중에 사라지는 시절인연이다. 시절인연이란 사물의 모든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한다라는 뜻인데 난 이 말을 인연도 때가 있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짧은 스쳐감부터 오래 알고 친하게 지내던 인연도 세월이 흐름을 쫓아 소리없이 흐려지는 것이다. 수많은 인연 중 그 고리가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떨어지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인연이 있다면 인연의 끈을 놓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끝까지 가고 싶은 인연이라고 해서 끝까지 이어지란 법은 없기에 인연은 저절로 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지켜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살다보면 그 어떤 사람으로도 대체할래야 대체할 수 없는 인연이 있다. 죽을 때까지 오롯이 내 가슴에 남아있는 사람, 바로 다음 생이 있다면 꼭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 들이 부부 사이가 아니겠느냐고 말하겠으나 꼭 부부사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어려울 때 힘이 되었던 친구 일수도 있고 피눈물이 나도록 아파했던 놓쳐버린 아픈 이별의 사랑일수도 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다음생의 전생이다. 지금의 고리가 끊어져 인연이 되지 못해 다음 생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만일 다음 생이란게 없다면 지금 어찌 행동해야할까가 답을 줄 것이다.
만일 현세에 만난 소중한 인연을 다음 생에 만나려고 하면 얼마나 걸릴까. 불교에는 겁이란 용어가 있다. 1겁은 가로 세로가 40리, 약 16km되는 그릇에 겨자씨가 가득 담겨있고 3년마다 한번씩 겨자씨 한 개를 버려 그 그릇이 다 비워지기까지의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하룻밤을 같이 자려면 3천겁의 시간이 닿아야한다니 상상조차 할 수없는 시간이다. 이토록 오래걸려 만난 인연을 때론 힘들다고 때론 화가 난다고 또 다른 좋은 인연이 있을 것이라는 금방 뒤돌아서는 인간의 가벼움은 100살도 못사는 생을 살면서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얄팍함과 내 앞에 나타난 인연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가르쳐준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어있다'는 말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연은 그렇게 쉽게 닿아지는 것이 아니며 저절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어있다는 말은 앞으로 만날 확률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을 회피하거나 어떻게 되겠지라는 자기 위안이라고 판단한다. 인연의 거의 모두는 사람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기에 지금의 아주 가벼운 인연 들부터 옷깃을 스치는 인연을 지나 사랑, 신뢰 그리움, 감동, 믿음을 주고 받는 인연을 쉽게 만날 수있다면 인연이란 말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내일도 모레도 다음 생에도 만나지 못할 누군가가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끊는 것보다 맺는게 더 어렵기에 한 번 맺은 인연은 더욱 소중히 다루어야한다.
내게 어떤 인연이 있었으며 지금 어떤 인연이 있는가를 생각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연이 있다면 끊어지지 않도록 더 욱 노력해야하는 것 아닐까. 수천 겁의 시간을 지나 만난 인연과 헤어짐이 있다면 다시 수천 겁을 지나 그 인연을 볼수 있을까. 하늘의 별처럼 셀수 없이 많은 사람 들 중에서 실날같은 인연도 잇기가 어려운데 옷깃을 스쳐 포옹할 수 있는 인연도 이토록 어려운데 수백만 년, 수천만 년만에 내 곁에 나타난 소중한 인연을 하찮게 대하고 쉽게 끊어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