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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Sep 16. 2024

가을은 도대체 언제 오나

생활 속 과학 이야기

가을은 온대지방에만 있는 계절이다. 여름에서 겨울로 다가서면서 서서히 온도가 떨어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시기이다. 계절이 바뀌는 동적인 기간인데, 봄과는 방향이 반대이다. 벡터가 반대 값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여름이나 겨울만 있는 곳에는 봄과 가을은 없다. 덜 더운 여름과 덜 추운 겨울이 있다.


춘분, 추분시의 태양광의 입사, Source: wikimedia commons by Przemyslaw


천문학적인 계절


사계절의 변화는 천문학적으로 지구의 자전축의 기울기가 0이 아니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만일 지구의 기울기가 0이라면 태양은 1년 내내 적도만을 내리쬐게 되고 극지방은 아주 약간만 햇볕이 들게 된다. 하지만 현재 같이 23.5도의 기울기가 있어서 북반구 기준으로 하지에는 북회귀선 지방에, 동지에는 남회귀선 지방에 해가 남중(머리 위에 뜬다는 이야기, 그림자가 제일 없다)하게 된다. 그리고 춘분과 추분 때에는 적도지방에 해가 남중한다. 


지구 괘도와 황도, Source: wikimedia commons


이렇듯 천문학적으로 따지면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지역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중위도 지역인 30~60도 지역이다. 우리나라를 대략 38도 지역으로 보면 심플하게 봄은 3~5월, 여름은 6~8월, 가을은 9~11월 그리고 겨울은 12~2월로 보면 된다. 


24절기


동양에서는 이것을 더 세분하여 지구의 공전괘도에 따라 24개의 지점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절기이다. 절기와 관련해서는 많은 이야기와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절기마다 제철음식과 행사가 열린다. 가을의 대표절기는 추분이 되겠다. 절기는 양력이다. 옛날에 농사와 관련하여 적절한 시점에 할 일들은 표시했기 때문에 음력으로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추분은 9월 22일이고 그날부터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보다 길어진다. 


기상학적인 계절


하지만 지구 자체에는 암석권, 수권과 대기권이 있어서 태양과의 위치관계만으로는 계절을 표현할 수 없다. 당장 2024년만 보아도 한창 가을이어야 할 추석 기간의 최고 온도가 30도를 넘고 있다. 이 정도면 가을이라고 우겨도 가을이 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인간에게는 가을이 온도와 자연의 상태로 규정되는 계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상학적으로 계절의 시작점은 아래와 같다. 


봄 : 5℃이상으로 올라가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

여름 : 20℃이상으로 올라가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

가을 : 20℃미만으로 떨어져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

겨울 : 5℃이상으로 떨어져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


결국 사후적인 기준이라 시간이 지나 봐야 계절이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기준으로 작년 필자가 사는 동네의 가을이 시작한 시점을 보니 10월 5일부터 최고온도가 20℃미만으로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겨울의 시작은 11월 24일이었다. 그러니까 가을은 대략 한 달 보름 정도였다. 결국 추분이 지나고 이주일 뒤부터 가을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의 기세를 보건대 10월 5일을 넘길 공산이 크다. 


여름이 없던 해


계절이 없어지는 해도 있다. 1816년은 여름이 없던 해(Year without a Summer)로 유명하다.  1815년 4월 초 인도네시아의 탐보라(Tambora) 화산(4,200m ->2,722m)이 폭발하였는데, 분출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를 대기권에 쏟아부었다. 또 다량의 이산화황(최대 100메가톤)이 포함되어 있어 대기 중에 에어로졸이 형성되어 태양빛을 가렸다. 2℃ 정도 기온이 급락했다. 


탐보라 화산의 위치 및 영향 지역, Source: wikimedia commons 


화산폭발지수(VEI)로 7의 대규모 폭발이었다(9세기 후반 백두산 분화는 6.5). 유명한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분화보다 화산재 양으로 8배 정도 규모이고 세계적인 기후 피해도 훨씬 더 심각했다. 폭발로 인한 직접적인 인명피해는 6~12만 명으로 추정된다. 1,000km  바깥에서도 폭발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 폭발로 지구에는 이상기온이 발생하여 여름철 작물(밀, 보리, 감자)은 기록적인 흉작을 피할 수 없었고 춥고 긴 겨울을 겪어야 했다. 


화산폭발지수와 화산재분출량, Source: USGS, 수정


1815년 6월 6일에는 미국 뉴욕, 메인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이때 에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쓰여졌다.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증가했고, 반대로 피해가 더 심각했던 유럽으로의 밀의 수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제는 활성화 됐으나 기후변화가 재자리로 돌아오자 밀가격은 폭락하고 미국은 대공황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때가 조선 순조 16년이었는데 호구조사 결과 2년 전보다 130만 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이에 따른 구호미의 방출 등으로 안 그래도 어려웠던 조선의 재정은 붕괴의 괘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기권 상층부의 기압배치, 북태평양 해수표면의 온도 등으로 볼 때, 이번 여름은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막연히 예측컨대 10월 15일경에 가을로 접어들면 빠른 가을이리라. 우리에게 계절의 선택권은 없다. 다만 견디고 받아들일 뿐이다. 


여름이 없는 해의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글로벌한 시대가 되었다고 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더워도 여름은 있는 것이 훨씬 좋다. 


여름이 와도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는 찬바람이 쌩쌩 불기도 한다. 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만나면 훈훈한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어떤 계절 같은 사람인가?  나도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도 넉넉하고 기대어 볼 수 있는 가을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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