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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우 May 02. 2024

무중력, 늦잠, 그리고 새벽(1)

김해솔의 무중력

2015년 3월 김해솔의 무중력, 2016년 5월 윤종신의 늦잠, 2021년 12월 윤상의 새벽. 외로운 봄을 노래하는 김해솔의 무중력, 애매하고 모호한 여름을 노래하는 윤종신의 늦잠, 그리고 잿빛거리 위엔 아직 남은 어둠이 아쉬운 한숨을 여기 남겨둔 채 지루했던 침묵은 깨어지고 눈을 뜬 하루를 노래하는 윤상의 새벽이다. 현재 시각 2024년 5월 2일 목요일 새벽 6시 10분 전. 카페에서 청소한 뒤 분리수거하러 새벽 공기내음을 들숨 하자마자 끄적이고 싶었다. 꽉 찬 두 시간이나 잠을 잔 덕분에 졸림, 속 쓰림을 얻었지만 끓어오르는 영감거리는 만병통치약이다. 그냥 추운 겨울에나 체감할 수 있는 바람이 5월 초에 내 살갗을 찌르었다. 그게 영감거리다.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오후 8시 즈음이었던가. 아마도. 봄바람에 흩어진 꽃잎처럼 시간은 멈추고 무중력 상태였다. 그때 나는 두 달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경영학 전공 대학생 2학년이었다. 그때 나는 개강파티에 참석하겠다고 후회하는 동시에 한 달 동안 무언가에 몰입을 하고자 쓸데없는 단기간 합격 MOS Master 자격증 강의를 청강 중이었다(그때는 분명 쓸데없었지만 취준생 시절 한 줄, 가까운 미래에 에세이 작가를 위한 한 줄을 끄적이는데 엄청남을 방금 깨달았다). 일주일에 하나씩 이 아름다운 자격증을 취득할 때마다 무중력 상태인 나의 구겨진 자존심이라는 깃을 치켜세워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봄바람에 흩어진 꽃잎처럼 시간은 멈추고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멍하니 걸었다. 멍하니. 이게 해방인가. 이게 고독의 즐거움인가. 내가 원래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던가. 그녀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서로 무너뜨리기 위한 말들을 나누었다. 다시는 서로의 삶에 침범할 수 없도록 그렇게 이별했다. 난 지쳤다. 처음 느낌 그대로. 애초에 몰랐던 사람처럼 그렇게 잊어냈다. 욕할 힘도 없다. 욕을 하면 어찌 됐든 또 떠오르니 그게 더 고통이었다. 그냥 지웠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처럼 타의에 의한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을 난 스스로 해냈다.


 2024년 4월 그녀에게 10년 만에 연락이 왔다. 끔찍하게 잊고 지냈던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분명 2015년에는 너무나 미웠다. 반가웠다. 그래,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누군가를 미움과 원망과 심지어 증오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안녕을 나누었다. 일주일 뒤 만남을 기약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꼬리를 무는 고민을 해결하지 못했다. 취소할까. 아니야를 하루에 두 번. 건당 20분 이상은 기본이었다. 하. 내가 어떻게 잊고 살았는데. 반갑지 않았다. 그래. 10년을 미움과 원망과 증오로 지워냄을 이유 없이 지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그때 모든 순간이 영화 이터널선샤인 크레딧처럼 천천히가 아닌 빠르게도 아닌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쳤다.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다. 정말로. 머리가 쪼개지는 충격을 10년 만에 다시 느꼈다. 봄바람에 흩어진 꽃잎처럼 시간은 멈추고 무중력 상태였다.


김경호의 와인이라는 노래 가삿말에서 '한번 빗나갔던 사랑은 다시 어긋나기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동진의 물음에 나는 크게 공감을 했고, 다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물씬 드는 하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만에 만난 그녀와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화는 반드시 존재했다. "캠퍼스 투어는 역시 너랑 해야 되는구나. 그땐 우린 너무 어렸고, 나도 나를 잘 몰랐어. 미안해."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사랑하는 이에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우리가 사랑에 있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 라며 안녕을 나누었다. 너의 몸짓 그 눈빛 그 속삭임 그 눈물 나는 너 너는 나 그렇게 사랑은 지나간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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