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친척 덕분에
나의 시댁은 강화다. 얘들 고모부는 해병대로 강화에 근무하셨단다. 시누이는 제주사시는 남자를 만나 제주로 시집가셨다.
나의 제주방문은 그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교사 임용 2년 차 남편을 만나고 사귄 지 1년 6개월 지나 지금의 남편이랑 강진에 계시는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려 갔었다. 아버님은 결혼을 허락하셔서 그 기념으로 제주에 있는 자기 누이에게 가자 하였다. 강진에서 멀지 않은 목포에서 배를 타고 4시간 만에 도착했다.
남편의 누나와 매형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삼은 매형은 술을 좋아하였다. 힘들고 고단함을 술로 달래었던 것이다. 시누이는 그것이 걱정이라고 그때도 말하였다. 낮에는 쉬고 새벽에 고기잡이를 해서 술을 드셔서 취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여름방학이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나와 같이 한라산도 가자했다. 오대산, 속리산, 월악산처럼 아침을 챙겨 먹고 누이의 응원을 받으며 산으로 향했다. 1100 고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짐을 맡기지 않아 산정에 가까워질수록 날은 덥고 점점 힘들어졌다. 그때 남편은 내 짐을 대신 받아 들어주었다. 자기 짐도 무거웠을 텐데 내 짐까지 받아 들고 산을 오르는 남편이 믿음직스러웠다. 난 그때 비로소 온 마음으로 남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후 첫째와 터울이 일곱살이나 나는 둘째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 처음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그때도 우리는 시누이네에서 머물렀다. 시누이네는 부부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고모부가 고기를 잡아오면 단골들에게 연락을 하고 손님으로 오는 분들에게 복어요리를 해주었다. 덕분에 복어요리를 처음으로 실컷 먹어보았다. 3박 4일의 꿈같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시누이는 식당이 한가해져서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접을 예정이라 하였다. 어렵게 사는 시누이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올라왔었다.
세 번째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조천면 펜션에서 머물렸던 시댁 가족 여행이다.
다섯 남매의 부부와 제일 어린 내 둘째 아들이 함께 한 시간이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진을 찍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한없이 즐거웠다. 늘 바쁜 남편과 아들이 함께 하니 더욱 좋았다. 서로 잘 챙겨주는 시댁식구들을 보며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여행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같이 시간을 내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도 나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다. 제주여행은 나한테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순간에도 미련하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내가 만든 작은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리고 일상의 반복이 좋지,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를 나는 거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흔치 않은 일임에도, 그 시간들이 다시 오기 어려운데도 나는 어리석게 행동했다. 현재를 충분히 즐겨야 함을 이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깨닫는다.
"늘 조심조심 조마조마하며 살게 한 불안과 잔 걱정들아! 이제까지 덕분에 잘 살아왔어. 고마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순간을 잘 맞이해서 충분히 즐기고 잘 보내볼게.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잘 연결할게. 삶을 여유롭게 맞이할게.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살아내 볼게. 조급해하지 않고..."
다시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고모부는 이제 술을 아예 먹지 않지만 건강은 공사 중이시다. 더불어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빈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현재뿐이다. 만일 이 순간을 잃어버린다면 인생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타마싯다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