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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 ( 沈潛 )

끝내 가라앉고자 하는 마음을 위하여

by 서기선

어느 날은
흐르는 것조차
부담이 된다.


움직임의 의지가 아니라
정지의 의지가
조용히 찾아와 앉는다.


빗방울 소리마저
마음 한켠을 울려
견딜 수 없어질 때가 있다.


햇빛은 너무 가볍고,
바람은 너무 무심하다.


그래서
문을 열지 않는다.
빛이 들어오면
나의 어두움이 너무 선명해질까 봐.


어디가 아픈지 말하지 못하는 날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부턴, 그냥
모든 게 괜찮은 척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워졌다.


살고 싶은 마음보다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먼 파도처럼 들리고
나 자신조차
자꾸만 멀어진다.


차라리
가만히 가라앉고 싶다.
누구도 흔들지 않는 깊은 곳으로
천천히


말을 아끼고
생각을 덜어내고
감정을 묶어둔 채
어딘가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그저 조용한 후퇴였다.


숨을 쉬지 않기 위해가 아니라


숨을 몰아쉬지 않기 위해
잠시 머무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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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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