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처가에서 지내고 있다. 아이는 학기를 마무리하고 4월에 들어온다. 물론 아내는 아이와 함께 런던에 남았다. 결국, 나는 장인 장모 두 분과 지낸다. 아내와 아이도 없는 처가 살이.
매일 깨닫고 있다. 아 이래서 다들 말렸구나. 아무리 궁해도 나와서 따로 지내는 게 실은 어른들을 위해서도 좋으리라고 모두가 얘기했다. 너만 불편한 게 아니라 부모님도 이만저만 귀찮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닐 거라고. 서로 못할 짓 하지 말고 회사 근처 원룸이라도 하나 구하라고.
그러고 보니 중년 아들은 80대 후반 어머니와 단 둘이 보내는 설 연휴도 어지간히 답답했다. 눈 마저 많이 내려서 외출하기도 어려웠다. 아버지 차 키는 누님이 실수로 가져가버렸다. 외출하려면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이라 나가기가 더 귀찮아졌다.
결국 KBS뉴스광장부터 아침마당과 인간극장, 설날 천하장사 씨름대회와 나는 자연인이다, 1박2일을 함께 보며 하품을 하고 졸고, 사이사이 밥을 차려먹고, 그러다 너무너무 심심해져버렸다.
아니 심심하기만 해도 괜찮았을 거다. 간간이 화가 치밀어오르고 답답했다. 이젠 돌아가시고 없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런던에 남은 손녀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가 어떻게 하면 좀더 편안하고 건강하게 사실지 이야기하다가, 우리 가족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다가. 감당 안 되는 노인의 고집에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어디 그 분만의 잘못이랴. 평생 밭에 엎드려서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아 없애고 물을 주고, 땅콩을 캐고 감자와 고구마를 캐고 무 배추를 뽑고 고추를 따서 말리고 콩과 깨를 베어서 말려서 털고 가지 호박 오이 고추를 심고 가꾸고 따서 반찬으로 만들고 벼를 베어서 낟알을 털어 모아서 말리고 방앗간에 가져가 껍질을 벗겨 쌀로 만들어오고 감 배 대추 포도 딸기를 따고 일일이 포장해서 트럭에 실어내거나 심지어 손수레에 싣고 나가서 직접 팔아 돈을 사온 삶이다(그렇다 시골에서는 농작물을 팔아서 돈을 산다고 한다).
식물처럼 한 자리에 붙박여온 삶, 시선은 마을 어귀를 넘지 못한다. 게다가 이젠 당신 스스로도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집만 세졌다. 목소리만 커졌다.
불효라고 해도 도리가 없다. "와 이젠 엄마랑도 못 살겠네"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것이다. 가까이 지내며 자주 들여다보는 것까지는 해도 내가 한 집에는 못 살겠다.
하물며 낳아주고 키워준 그 익숙한 어머니랑도 못 살겠는데 처가 부모님과 지내는 게 어디 좋기만 하겠나. 제 아들과 지내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닌데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를 거두는 게 어디 할 짓인가.
그래서 내 전략은 처가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내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 특성상 오전 9시에 맞춰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침 8시만 되면 집에서 나간다. 오랜만에 하는 회삿일도 손에 익지 않아서 긴장이 있다. 후배 팀장에게 책 잡히고 싶지 않으니 내 몫은 해야 할 터인데. 갓 입사한 수습 시절 같은 느낌이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귀국과 복직 후엔 몹시 바쁘다. 오랫동안 못 봤던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저녁 약속이 이어진다. 어느덧 나도 부어라 마셔라 하는 습관은 고쳐먹었으나,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밤 11시, 12시는 우스운 것이다.
런던 생활에서 만난 사람들, 보고 느낀 것들을 남겨두고 싶어서 간간이 글을 써보는 중인데 어디 꺼내놓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퇴근 후에도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앉아서 글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보다가, 좋은 소설들을 찾아서 읽어보다가, 글 쓰기 관련 책들을 뒤적이는 나날이다.
주말에도 예외가 없다. 아침만 먹고 뛰쳐나와서 집 앞 마을 도서관에 종일 앉아 있다. 도서관 1층 커피숍은 커피 맛도 제법이다. 알뜰하게 텀블러 할인까지 받으면 2000원에 향긋한 커피 한 잔 마시는 즐거움도 있다.
마을 도서관이라는 달콤한 구원. 바쁜 회사 생활과 잦은 술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와 책 읽기라는 피난처. 그나마 숨은 쉬고 산다.
어쨌든 끝은 있다. 4월 아이 귀국 전에 세 식구가 들어가 살 집을 구해야 한다.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할지부터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아무튼 나가자. 가능하면 일찍. 나와 장인어른 장모님 세 사람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