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나를 발견한 순간
스무 살에 만난 첫사랑과 서예는 언제나 함께하는 연관검색어와 같은 의미였다. 첫사랑 때문에 가입했던 서예서클활동은 그가 군대를 간 후로 자연스럽게 서예와는 멀어졌다. 공식적인 첫사랑은 끝났지만 비공식적인 짝사랑은 한동안 나 혼자서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시간은 흐르고 누군가를 통해서 간간히 그의 소식을 들었다. 흥미 없는 학교생활은 이어졌고 어릴 적 개근상에 의미를 두던 부모님의 가치관으로 인해 학교는 빠짐없이 다녔고 졸업을 한 후 또 한 번 맞지 않는 직장에 다녀야만 했다. 타고나기를 센스가 없고 눈치가 둔한 편이라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 거북했다. 가족도, 지인도, 친구도, 어느 누구도 사회생활에 대한 요령을 알려주지 않았다. 원래 처음엔 다 힘든 거라는 말뿐이었다.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는 부대끼기만 했고 맞지 않는 일은 너무도 불편했다. 그러면서 나의 첫사랑도 붓글씨도 내 기억에서는 멀어져 갔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공식적인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매일매일이 전쟁처럼 흘러가는 부대끼는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서예를 다시 떠올리게 된 그날, 그날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집 가까운 곳에 새로 오픈한 서예학원을 발견하면서부터 잊혔던 묵향도, 까마득한 첫사랑의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그때 그렇게 홀린 듯이 들어가 순식간에 등록을 하고 매일매일 출석도장을 찍었다. 내가 좋아한 것은 그였을까? 붓글씨였을까? 붓글씨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찾고 버겁지 않은 일을 찾은 것으로 보아 첫사랑은 거들뿐 붓글씨를 훨씬 좋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