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만난 네덜란드 친구와
떠나기 전 공항에서 만나 식사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둘,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해.
사랑에 대해서는 나를 잃지 말자는 말.
나 자신이 단단한 바위가 되어
어떤 바람과 파도에도 흔들리지 말자고 했다.
미래에 대해서는 한국인인 나를 걱정하는 뜻으로
'친구, 60%만 해도 괜찮아'
라는 말이 날아왔다.
일중독에 잘 빠지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을 알고 있는
내 친구는 본인의 일이 아니라면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조언해 주었다.
한창 일에 빠져 살던 시절에는 새벽 퇴근이 즐거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뭔가 했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느낌이 뜨겁고 좋았다.
그 느낌에 중독되어 일에 파묻혀 살았다.
시키지 않은 일을 나서서 하고
언젠가 다 뜻이 이루어지겠거니 하며 달려왔다.
그러다 목표가 좌절되었을 때,
내 꿈은 그저 무지개에 불과했음을 알았을 때에
나는 방향을 잃은 배의 선장이 되었다.
삶의 나침반과 지도가 있음에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바다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섬이 보이길, 답이 나오길 기도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에는 아무 결과도 없었다.
번아웃이 된 잿더미는 바람에 휘날렸다.
그저 파도와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도 섬이 있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상황을 모두 내가 좌우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후,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했다.
'이 일은 내 일이 아닌 회사 일이야.
필요한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나를 위하자.'
처음에는 눈치도 보였지만 이내 깨달았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구나.
어깨의 힘을 빼도 된다는 먼 친구의 말에
기억 저편에 있던 때를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역시, 다들 비슷하게 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