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침 출근길, 여름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시위하던 매미들이 빛바랜 나뭇잎을 이불처럼 덮고서 고이 자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나에게 조만간 트렌치코트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은근슬쩍 귀띔해 주었다.
“쉿! 너만 알고 있어. 다음 주부터 쌀쌀해진대.”
요즘 나는 집 서재에서 주식 투자를 하고(여러 대의 모니터가 필요하다), 로컬스티치에서는 글을 쓰는 습관을 길들이고 있다(노트북이면 충분하다). 딱히 주식 매매를 하지 않는 날에는 로컬스티치 주변 카페를 기웃거리거나, 느지막이 출근해서 (만화)책만 읽다가 퇴근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모르게 창작 활동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르던 하루였다. 마법의 탕약(커피) 덕분인지 손가락엔 부스터가 추가된 것처럼 키보드 위에서 현란한 손재간을 부리고 있었다.
타닥. 타타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달리는 말발굽 소리 같았나. 건너편 자리의 코스타가 나를 힐끔 째려보았다. 난 그의 얼굴에 나타난 불편한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타이핑의 속도와 강도를 낮추니 코스타가 안도의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눈빛으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에티켓을 나누었다.
난 살금살금 걸어가는 고양이처럼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이제는 나에게 거슬리는 물체가 생겼다. 처음엔 수평이 맞지 않는 바닥 때문일 거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자꾸만 내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 아닌가. 타이핑하던 손가락의 리듬이 연거푸 깨졌다. 신경이 쓰여 도저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정체는 바로 ‘나비 무늬 바닥’이었다. 자갈들이 섞인 화강암을 반듯하게 절단하면 나타나는 패턴인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의 바닥재로 널리 쓰였다. 골프선수가 그린의 경사를 파악할 때처럼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주시하면 회색 도화지에 푸르스름한 나비들이 무더기로 날아다니는 듯한 모습으로 (나에게만) 보이는데, 그 이유는 어릴 적 나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는 병원에서 일하셨다. 정확히 어떤 병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문엔 항상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동네에 병원이 하나밖에 없어 늘 환자가 많았다. 할머니는 입구에서 수납을 보시고, 식당에선 음식을 조리하셨으며, 가끔 환자들이 몰릴 땐 대기실에서 청진기도 잡으셨다. 나에게 할머니는 병원 ‘맥가이버’ 그 잡채였다. 학교가 끝나면 난 항상 할머니가 일하시는 병원의 빈 침상에서 할머니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그때의 입원실 바닥 무늬가 바로 로컬스티치 회현점 건물과 동일했다.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입원실 침상에서 숙제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각자 돌잔치에서 무얼 잡았는지 그려오라고 하셨다. 사진이 있으면 반드시 챙겨 오라고도 덧붙이셨다.
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던 탓일까, 졸음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딱딱한 돌바닥이 내 얼굴 앞에 있었다. 얼굴은 얼얼했고 바닥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낮잠을 자다 침상에서 굴러떨어진 것이었다. 충격 때문인지 나의 눈 앞엔 수백 마리의 나비들이 팔락거리며 날갯짓을 해댔고, 귓가엔 가끔 할머니를 따라 절에서나 듣던 종소리가 끊기질 않고 타종 되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일까?’라는 삶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이 처음으로 나의 머릿속에 태어난 순간, 곧바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앙!”
나의 울음소리에 놀라 입원실로 뛰어 들어온 할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불주사라 불렀고 어른들은 관장이라 불렀다. 할머니가 설마 그 주사기를 나에게 꽂으시는 건 아닐까 덜컥 겁에 질렸다. 저절로 울음이 멈추었다.
할머니는 이놈이 또 사고를 친다고 입으로 다그치셨지만, 하얀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려 있었고 메추리알처럼 동그래진 두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내 얼굴을 여기저기 눌러 보시곤 이내 상황을 파악하셨다. 코뼈가 부러진 건 아니라며 하얀 솜 두 개를 콧구멍에 가득 꽂아 주셨다. 불주사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할머니의 한숨을 나도 모르게 따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흘린 쌍코피였다.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해서 무척 힘들었지만, 할머니 무릎을 베고 있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말랑말랑한 할머니의 종아리를 끌어안고 코를 묻으면 강아지풀 향기와 곤충들이 통통 뛰어다니는 듯한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그럴 때면 난 풀잎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평온했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처럼 얌전했다. 할머니 손등에 새겨진 지렁이 같은 주름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물었다.
“할머니, 나 돌잔치 때 뭐 잡았어?”
“…….”
갑작스러운 질문에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셨지만, 곧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응, 돈이랑 연필을 잡았어.”
“우아 정말? 그러면 난 커서 돈도 벌고 공부도 잘하겠네?”
할머니는 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 할머니와 나에겐 증명사진 같은 사치스러운 물건이 있을 리 없었다. 숙제로 그린 그림 속엔 엄마도, 아빠도, 잔칫상도 없었다. 스케치북 정중앙엔 돈과 연필을 손에 쥐고 만세를 하는 나의 모습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축하해 주는 할머니와 나비들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꼬마 화백이 숙제로 받은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곁에서 아무런 말씀 없이 감상만 하셨다.
어느새 창밖에 하늘이 연보라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을 때 내 코피는 멎어 있었다. 새로 온 간호사 누나가 방 안으로 들어와 할머니의 퇴근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나비 무늬 바닥. 그때부터 할머니와 난 병원 돌바닥을 그렇게 불렀다.
현재의 나는 주식 투자(돈)를 하며 글(연필)을 쓰고 있다, 할머니의 예언대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