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딱히 나눌 얘기도 마땅찮은.
오랜만에 회식이 잡혔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는 거의 없었던 기회이기에 이렇게 기회가 되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회식이 궁금한 이유는 대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는가? 누가 참석하는가? 직장을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좋고 싫은 부류가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은 진료부만의 회식임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찌 됐든 간에 앉은자리에서의 대화 주제는 몇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대개 술도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만 대개는 정치나 현 시류는 물론 사건, 사고 등이 주를 이루며 각자의 의견으로 토론이 진행되다 보면 시간은 참 쉽게도 흘러갑니다. 오늘은 골프 이야기로 시작하여 자동차 이야기로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갑니다.
저는 본래 술도 마시지 못하는 데다 골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술자리에서 나누는 골프나 골프장 이야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용하는 용어조차 생소하여 일일이 그 뜻이나 개념을 묻느라 대화의 맥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고 대화에 끼어보겠다고 그에 대한 정보습득이나 독학을 해 볼 용의도 없어서 어서 그 주제가 넘어가기만 바랄 뿐입니다. 다행히 이는 각자의 취미이기에 이야기가 길어진다 한들 그다지 불편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제가 자동차로 넘어오면서 제 마음이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휘발유인가, 디젤인가? Hybrid인가, 전기차인가? 정도에서 의견을 나눈다면야 얼마든지 의견을 나눌 수 있겠는데, 제 마음이 뒤틀리기 시작한 건 자기가 선택한 사양이 최고인 양 으스대던 시점부터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선택을 했단 비아냥을 듣고 난 이후부터는 내 심사가 틀어지기 시작한 셈입니다. 더 나아가 얼마 전에 구매했던 독일 3사 중의 한 회사 자동차 자랑, 최소한 렉서스 정도는 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먹고 있던 음식을 뱉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들끓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나라 차도 좋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뱉은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절대 수입차를 타지 않겠다, 일본 차는 더더욱 안 탄다는 편협한 사람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불편한 이유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게 남에 의해 비하되고 평가절하되는 일이 불편할 뿐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끝장은 아파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평수, 아파트 브랜드의 가치는 물론 급기야 전세가는 얼마냐? 매매가는 얼마냐? 글쎄요. 제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화의 주제로 무엇이 적절한지는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어느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좋겠느냐 물으면 딱히 지정하여 대답하기도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하기야 최근 일어난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늘 그 끝은 정치색이요, 현 정부의 무능으로 끝난다는 말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더 답답한 건 이야기의 방향을 지역색으로 몰아가면 최악의 회식 판일 수도 있긴 합니다. 최소한 내가 참석하는 모임만큼은 적당히 기분 좋게 끝나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욕심으로 마치려나 봅니다.
다음 회식은 과연 어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