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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Dec 05. 2023

잔잔하고 고요한데 끝없이 요동치는 바다.

우리 같이, 또 함께. 이 거센 파도 앞에 서봅시다.

인생이라는 짧은 여정 속에는, 수많은 파도가 있다. 어느 때에는 그 파도가 너무 세서 휘청거리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그 파도에 발을 적셔보기도 한다.

파도는 계속해서 사무치게 쳐왔고, 지금도 어김없이 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묵묵히 칠 것이다.
















어차피 칠 파도를 굳이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말하던 화해. 화해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해가 참 성숙하고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제2의 자신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덤덤히 말하는 화해의 말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더 나은 미래는 아직 꿈꾸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도우며 살고 싶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화해와 나눈 우울에 대한 사유를 더 자세히 들어보자.



















<포터뷰:블루>로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에요. 우울에 대한 사유를 함께 나누게 되었는데, 어때요? 예전부터 작가님과 '우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제게 우울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지속되어 온 감정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고요. 이제는 내 인생에 스며든 친구 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꼭 있어야 하는 감정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 우울함을 느꼈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6살의 기억이 있어요. 사실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는데, 6살 때 유치원에서 혼자 많이 놀았어요.  그래서 그 때의 우울은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작은 6살 아이가 외롭다는 것을 느꼈다는 건 어떤 걸까요? 예쁜 체크 스커트도 입었고, 친구들이랑 똑같이 레이스 양말도 신고. 나도 공주처럼 하고 왔는데 나는 왜 친구들이랑 공주놀이를 못하지, 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혼자 의자에 앉아서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우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학업적인 부분으로 옮겨간 것 같고요.

학업적인 부분이라면 어떤 걸까요? 목사님께서 운영하시는 교회 공부방을 다녔거든요. 그런데 지도의 의미로 체벌을 하시던 곳이었어요. 나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데, 왜 여기서 맞으며 있어야하지,라고 자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맞으니까, 아파서 울었는데. 그게 아파서 우는 건지, 속상하고 우울해서 우는 건지도 스스로 잘 모르겠었고요. 우는 소리를 내면 더 혼이 났어서, 숨죽여서 눈물 흘리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요.

마음껏 울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은 조용하게 우는 법을 학습하죠. 맞아요. 그래서 지금 와서 "너는 왜 소리 내서 울지를 않아?"라는 말을 듣게 되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 화해 씨는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어떻게 소리를 내서 울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울고, 혼자 감정을 정리해 내려고 애썼어요. (잠시) 그런데 혼자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왜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도피처가 생긴 느낌이랄까요.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혼자 있을 만한 좋은 핑계가 생긴 것 같아요. 가끔 그러면서 과거의 순간들을 마음속에서 다시 정리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런 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들 하죠.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과정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도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컸고, 또 안전하고 건강한 시기요. 지금 화해 씨는 우울을 꽤나 잘 다루고 계시네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어요? 공황 증상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올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더라고요. 그때마다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생각을 갖고자 애썼던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결해야 하는 것을 빨리 해내자, 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공황 증상도 많이 나아졌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요. 그렇게 일어서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끝없이 우울해질 때는 혼자 그 안에서 그저 힘들어하며 시간을 보내고요. 추스르고, 다스리면서요. 밖에서는 티 내지 않고 싶었어요.

화해 씨가 굉장히 현실적이고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화해 씨라면 (잠시) 밖에서 웬만하면 잘 울지 않으실 것 같아요. 지금도 제법 슬픈 이야기를 하는데도 계속 웃고 계시잖아요. 예전에는 울면서 이야기했는데, 그래도 많이 지난 일이라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 화해 씨는 살아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첫째로는, 일단 태어났으니까요. 그리고 둘째로는 (잠시) 제2의 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무 살이 되고, 취업도 안 되고 가고 싶은 학과도 없었어요. 그렇게 어떡하지, 하던 순간에 취업이 됐거든요. 돈을 버니까 일단 나 하나는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나쁜 대표님을 만났어요. 그래서 '저 사람보다는 내가 반드시 더 잘 살아서 저 사람을 짓밟아야겠다'라고 생각도 했고요. (웃음) 직접적인 복수는 아니어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더 이상 나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더 나은 미래까지는 꿈꾸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도우며 살고 싶어요.

제2의 자신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니, 그 말이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을 것 같아요. 그럼 요즘은 우울을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파티에 초대되었다고 생각해요. 나 혼자만의 파티. 불안들이 초대한 조용한 파티이고, 그 파티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이요. 파도는 거칠게 치다가도 잔잔해지잖아요.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알아서 시간이 지나면 조금 잔잔해지고. 눈을 감고 그 불안을 마주하면, 결국 그것들이 사라지고, 잠에 들지요. 그러고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꽤나 개운해요. 이게 제가 나름 힘을 들이지 않고 우울을 지나치는 방법인 것 같아요. 저는 저만의 파티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 본 적이 없는데, 소마님께서 첫 손님이 된 것 같아요. 소마님은 초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영광이에요. 혹시 과거의 화해 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냥, 안아주고 싶어요. 말없이. 이 말을 하다 보니 예전에 본 연극인 <안나라수마나라>가 생각이 났는데요. 그 연극에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 자신에게 다가가서 '저는 커서 어떻게 돼요?'라고 질문을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질문을 듣고는 다 괜찮아진다고, 잘 산다고 답을 해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괜찮지 않은, 그런 부분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너무나 슬픈걸요. 극에서 마법사가 '너 자연스럽게 과거의 너에게 위로를 했어'라고 말해요. 그 말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엄청 울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본인에게 스스로 위로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벌써 슬슬 마무리입니다. 본인의 우울을 다르게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우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요. 잔잔하고 고요한데 끝없이 요동치는 바다.

왜 그렇게 표현해요? 아끼는 언니가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어요. "너는 참 겉으로 표현을 못한다."라고요. 잔잔하고 고요하고, 또 조용한데 네 마음속은 너무 요동치는 것 같아, 네 마음속은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아, 라고요. 남들에게 다 숨기고 있던 비밀을 누군가에게 순간적으로 들킨 기분이었어요. 그 뒤로는 사람들이 힘드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답하고 있어요. '지금 좀 파도가 세네.'라고요.

슬프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왜 괜찮다고 생각해요? 일정하게 칠 파도는 쳐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지금 파도가 일정하게 치고 있나요? 어차피 이 우울이라는 감정 없이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살면서 계속해서 일정하게 우울은 찾아올 것이고. 어차피 칠 파도를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으니, 살아가야겠다, 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으며, 화해 님께서 조금 덜 웃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웃고 계시길래. 정말 잔잔하고 고요한데, 요동치는 바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파도, 파도는 치지요. 그런데 혼자 치면 아파요. 같이 쳐야 해요. 그런 감정이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또 그런 사람들 앞에서 조금은 덜 웃을 수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언젠가 제 우울이라는 즐거운 파티에 초대될 사람들에게, 와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것만큼 기쁜 게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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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SOMMAR CHO

edito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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