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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12. 2024

누구에게나 왕년은 있다

주간보호센터 사회복지사로서 차량운행과 더불어 중요한 업무가 지켜보기이다. 평소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청소하고 계시면 같이 하는데. 지켜보기 모드일 때는 멀뚱히 서거나 앉아서 어르신들을 지켜본다. 감시는 아니고. 넘어지시거나 위험하지는 않으신지. 싸우지는 않으시는지. 등등 모든 것을 지켜본다.


나는 빠른 80년생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79년생과 학교를 다녔다. 재수를 하고 80년 생과 99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2000년 군대에서 걸린 조울증으로 방황하다 2012년 8월 13년 반 만에 졸업을 했다. 2012년 봄 마지막 학기에 교생실습을 다녀왔다. 교생실습 기간 동안 월세 방을 얻기도 그렇고 여관에서 달방 살기도 그래서 고시원에서 잠깐 지냈다. 교생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딱 2주간 하루도 쉬지 않고 고시원 옆 인력사무소에 나가 노가다를 뛰었다. 공사현장에는 안전봉 들고 같은 자리에 종일 서 있는 신호수가 있다. 쉬워 보여도 안전을 위한 중요한 역할이다.


다른 선생님이 일하고 있으면 거들지 않고 가만히 있기도 그렇다. 그럼에도 지켜보기를 할 때에는 멀뚱히 서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일이 어렵지는 않은데 그 타이밍을 아는 것이 어렵다.


점심을 드시고 2층 물리치료실로 올라가시기 위해 남자 어르신과 여자 어르신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난 곁에서 홀 전체 지켜보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 어르신은 60대로서 요즘에는 노인 취급 못 받는 연세다. 그럼에도 어르신 센터에 나올 사정이 있으실 것이다. 여자 어르신은 남자 어르신보다 스무 살은 더 나이가 드셨다.


"아줌마 예전에 남문에 놀러 오셨지요?"

남자 어르신이 한 손을 하늘로 들어 빙글빙글 돌리셨다.

"내가 거기 주인이에요. 옛날에. 여기 센터에도 오시던 분들 몇 분 계세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여자 어르신은 수줍게 웃으셨다.

"제가 사람 얼굴 기억을 잘 못해서요."


"어르신 예전에 사업하셨었나 봐요."

"캬바레를 했었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이랑 몇 번 갔던 거예요."

"캬바레면 콜라텍이랑 비슷한 건가요?"

콜라텍은 원래는 청소년들이 술 담배 없이 건전하게 춤추며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자는 취지로 생긴 것이다. 청소년이 떠난 콜라텍은 어르신들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캬바레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 노는 곳."

어르신의 캬바레는 모르긴 몰라도 20년도 더 전일 것이다. 콜라텍은 그때 막 생겨 청소년과 술 못 마시는 미성년자 대학 새내기가 콜라 들고 춤추던 곳이다. 캬바레는 몰락하고, 콜라텍이 그 대체재로 기능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캬바레가 있다고는 하는데. 40대 50대가 노는 성인 나이트와 유사하고. 더 어르신들이 콜라텍에서 노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60대 남자 어르신이 캬바레 주인을 하고, 80대 여자 어르신이 친구랑 놀러 갔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의 왕년에. 자신은 사람 얼굴 잘 기억 못 하신다는 캬바레 손님 어르신도 사실 캬바레 주인 어르신의 얼굴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사스러워 모르는 척하는 거지.


 또한 왕년에 날 아는 사람이 아는 척하면 남사스러워서 모르는 척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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