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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연 Oct 13. 2023

서울의 우울

한 곳에 오래 눈빛을 빠뜨린 흰 얼굴들이

먼 나라의 얼굴을 하고 일반 열람실에서 나온다

실실 웃다 멈춘 표정이 뒤를 따라 나온다

     

어떻게든 서울을 견뎌볼 요량으로 365번을 클릭한다

육체부대들이 모여 공무원 시험 준비로 벽은 낡아가고

도서관 앞마당에 데모하는 성가대원들 노랫소리가 드높다 

    

학생회관에서 A 식으로 점심을 먹고 규장각에 들어선다

전시관 바닥에 놓인 채색본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


까마득한 기암괴석의 봉우리를 기꺼이 바닥에 눕혀놓고 

괴나리봇짐을 지고 수백 켤레 짚신을 닳아가며 걸어간 길

평지를 딛는 등고선의 높이가 까마귀 날 듯 호기롭다


지도에 미친 한 남자의 발품을 따라

나의 선조들이 살았던 우물가에 가만히 앉아본다


퐁, 퐁, 퐁, 햇빛 받으며 솟구치는 서출동류(西出東流)한다는 물길

허기를 찰랑이며 물동우를 이고 가던 거미줄 같은 유전자의 뿌리들

내설악 어디쯤에 가문의 빗돌이 묻혔다는데


먼 과거로 돌아가라는 시간의 주름살 위에 앉아

수소문의 귀를 모아 빗돌의 이마를 밝혀보아야 하는 건지

옛 지도는 계곡물에 떨어진 꽃잎처럼 물의 태엽을 감아 돌고


대동여전도를 바닥에 전시한 규장각 안으로

서울의 우울이 자꾸 들이치는 거였다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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