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지금 저 여인이 대가를 치르고 있는 이유의 전부입니까?”
음악 하나 없이 고요한 집. 아침을 여는 새의 소리도, 신문 배달원의 자전거 체인 소리도, 자동차가 오가는 소리도, 그 흔한 도시 소음 하나가 없는 곳. 유일한 소리라고는 과열되기 일보직전에 서 있는 세 사람의 응집된 들숨과 날숨뿐. 이제야 서로의 안이 보이기 시작한 그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상대의 위아래를 뒤집어 보고 싶다는 것, 그것 하나였다.
“예, 이게 전부입니다. 두 분의 표정은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전부 다 해 드린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저 여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죽는 건가요?”
여자가 물었다. 여자의 말을 들은 공덕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물론 손은 식탁 아래 그대로 둔 채 속으로만. 여자의 눈이 쫓아오기 전, 공덕은 재빨리 남자를 흘겼다. 남자의 눈을 본 공덕은 서늘해짐을 느낌과 동시에 확신했다. 사실을 말한다면, 칼꽂이에 들어 있는 날붙이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것이라는 걸. 공덕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여자와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특히.
“오늘 회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지금이야 말씀하신 대로 극악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일단 당사자인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야 어느 쪽으로든 일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주인을 미행이라…”
공덕이 여자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 가는 중에 끼어든 나지막한 목소리. 여자의 고개가 공덕에게서 남자 쪽으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그리고 뒤늦게, 남자가 내뱉은 문장을 공덕은 인지했다.
“여보, 지금 뭐라고 했어요?”
혼란의 시작이었다.
“네? 뭐가요?”
공덕은 침을 삼켰다. 남자의 발뺌에 공덕은 생각했다. 지금의 저것은 거짓이 아니다, 저것은 남자의 본심이다, 라고. 그리고 공덕은 그 황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희 회장님께서는 부하를 하인 다루듯이 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주인과 같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군요.”
공덕의 말을 들은 여자의 눈으로 실망의 색깔이 짙어졌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주변의 공기. 남자는 한발 늦게 그 냄새를 맡았고, 그 한발은 공덕에게 역전된 상황을 취하기에 충분한 틈을 마련해 주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어요.”
남자가 여자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여자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남자는 황급히 손짓과 더불어 말을 덧대었다.
“알잖아요. 내가 뭘 말하려 했는가를. 그냥…, 그냥 위치가 다르다는 말을 하려던 거예요. 정말 다른 뜻은 없었어요.”
여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서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그리고 공덕은 보았다. 실망한 사람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여자는 남자가 팔을 잡아챌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에 있는 남자를 향해 차갑게 말을 던졌다.
“정말 다른 뜻은 없었군요.”
그리고 여자는 2층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슬픔을 감추려는 탓에 그녀의 어깻죽지부터 떨어지는 선이 뻣뻣이 움직였다.
“따라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공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남자의 따가운 눈길이 느껴지자, 왼손가락을 들었다 놓으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부인이 없어 그 감정을 상세히 알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뭐, 그래도 아내를 감싸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니만큼 직접 답을 듣고 싶긴 하군요.”
공덕은 높은 곳에서 물줄기를 떨어뜨리듯 높이 오른 자세로 남자를 향해 말을 건넸다. 알아도 별수 없을 만큼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천연덕스러움이었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말을 들은 공덕은 입안 가득 맛있는 음식을 머금은 것처럼 그를 음미했다. 실제로 공덕은 입을 우물거렸다. 그리고 그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의 말소리가 공덕의 귓가를 향했다.
“차마 아내에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공덕 씨가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더군요. 제겐 그 장면이 당신 한 사람에게 모두를 떠넘길 수 있는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남자가 공덕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도둑질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에요. 도둑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있는 걸 들고 나를 만큼 인생을 던지지 않았으니까.”
남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제 남자에게서도 먼저 일어난 부인과 같은 분위기의 어둠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를 본 공덕의 머릿속으로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 한 가지가 스쳐 간 것은. 그리고 그것을 떠올린 공덕은 웃음을 참는 것이 불가능했다. 공덕의 입술 사이로 세찬 바람 줄기가 새어 나왔다.
“큽.”
“크흡.”
남자의 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덕은 두 번의 바람 소리에서 소리를 그쳤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섬에 내려 주었던 조종사가 제게 했던 조언이 어떤 기억과 함께 불현듯 떠올라서요.”
말을 들은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조종사가 한 말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그 기억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도, 주먹을 올려, 있는 힘껏 공덕의 얼굴을 가격하지도. 남자의 분위기는 끔찍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리고 공덕은 남자의 감정이 어떤지 아는 듯한 얼굴로써 홀로 시작한 말을 계속해 이어나갔다.
“조심하라더군요!! 당신을! 왜 하필 이 순간 기억이 난 걸까요! 신조차도 제가 더 이상 속아 넘어가는 모습이 보기 불편했나 봅니다. 안 그렇습니까, 밀코바 씨. 연기자 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