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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May 12. 2024

결혼 20년, 12번째 이사갑니다

결혼 후 20여년 간 11번의 이사를 하고 12번째 집에 살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이사를 많이 한걸까?


맞벌이 하면서 출산하고 아이들 키우느라고 친정, 시댁 근처로 이사다니다보니, 당시에는 매번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이런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길에다 뿌린 돈이 얼마인지..


한 집에서 2년을 채우지 못해 매번 물어줘야 했던 복비며, 미리미리 버리지않은 탓에 더 많이 낸 이사비도 문제지만, 이사하는 기회를 활용해 좀더 전략적으로 재테크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이런 생존형 직장인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매일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심정으로, 출근길 지옥철에 오른다.




부동산 볼 때 기준이 아래 다섯가지라고 한다.

(중요도 순)

1. 일자리

2. 교통

3. 교육

4. 인프라

5. 자연환경


여기에 '육아(양가 인근)' 한가지 기준을 더하여 그간의 이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첫번째집 : 신도시 신축오피스텔 풀옵션 원룸(전세)

우리부부 모두 회사다니기 좋은 입지였다. 특히 공원 많은 주변 자연환경이 좋았다. 주말마다 남편과 중심지로 나가 맛집을 전전하며 욜로 생활을 즐겼다.

-> 이 때부터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맛집 투어 대신 임장을 다녔더라면?


두번째집 : 강남 투룸 빌라(전세)

출산을 하면서 친정 인근으로 이사왔다. 풀옵션 원룸에서 살다 왔기에, 가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기보러 놀러온 후배가 "언니, 이렇게 사는 줄 몰랐어…어째ㅠ" 동정어린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난 가끔 아기를 친정에 맡겨두고 남편과 강남의 근사한 식당, 카페 등 좋은 인프라를 누릴 수 있어 좋았다.

-> 이때 영끌해서 강남 소형평수를 샀어야 했다!


세번째집 : 강남 40평대 아파트(전세)

아이 봐주시겠다고 시부모님이 (내 회사 인근) 강남으로 이사를 오셔서 40평대 아파트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이 기회에 강남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하심 ㅎㅎ) 이 때 과소비가 절정에 이르렀다. 부모님은 우리 먹으라고 잔뜩 사오시고, 우리는 또 부모님 드시라고 잔뜩 사오고...집앞 고급 빵집, 백화점 식품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지하철 역이 멀어 택시비도 많이 들었다.ㅠ

-> 시댁과 ‘살림을 합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네번째집 : 신도시 20평대 아파트(전세)

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분가하여 신혼 때 살던 신도시로 돌아오게 되었다. 방 3개, 화장실 1개 구축 아파트였는데 결혼 후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된 셈이다. 공원과 하나된 주변 자연환경이 너무 좋았다. 매일 야근하는 남편 기다리기가 지루했던 나는 두돌 지난 아기랑 매일 버스타고 둘이서 놀이공원에 놀러다녔다.

-> 남편 직주근접 위해 신도시로 갔는데, 남편 회사가 이전을 하는 바람에 ‘닭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ㅜㅜ


다섯번째 집 : 시댁인근 20평대 아파트(전세)

재취업 하면서 부랴부랴 시댁 인근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재건축 구수리 집으로 내 인생 최악의 집이었다. 다행히 집을 사서, 1년만 살고 나올 수 있었다.

-> 맞벌이라면 아이 어릴 때 양가 근처에 살게 된다.


여섯번째집 : 시댁인근 올수리 20평대 아파트(자가)

첫 자가에 살게된 만큼 거금 들여 올수리를 했는데, 처음 6개월은 정말 좋았다. 그렇지만, 외진 위치 탓에 매일 택시비가 들었고 민도도 별로인데다가 인근에 비해 집값 상승도 더뎌, 하루빨리 탈출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결국 2년만에 팔고 나가게 되었다. 인테리어 비용 어쩔ㅠㅠ

-> 시댁보다는 친정 인근(강남)에 집을 샀어야 했다!


일곱번째집 : 학군지 30평대 주복(전세)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따라 학군지로 이사왔다. 처음 살아보는 주복은 신세계였다. 비오면 지하상가에 내려가 한끼 사먹고 오면 되고, 너무 편리했다. 그런데 그런 장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이중창이 아니어서 겨울에 무진장 춥다는 점과, 관리비가 사악하다는 점이다.

-> 나는 주복과는 안맞는 걸로...


여덟번째집 : 미국 아파트(월세)

아이 데리고 연수 간 미국에서 운좋게 고급아파트 저층에 살아볼 기회를 얻었다. 비록 가구가 없어 사과 박스 놓고 밥을 먹어야 했지만, 따스한 햇살과 수영장, 그 두 가지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던 내 인생 최고의 집이다.

-> 수영장 등 커뮤니티 시설은 중요하다.


아홉번째집 : 강북 30평대 아파트(자가)

미국 연수 가기 전 30평대로 갈아타기를 했다. 드디어 시댁 인근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금들여 올수리한 집에서 딱 2년 살고 헐값에 팔아 남좋은 일만 시켜준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최소한의 비용만 들여 대충 수리하고 들어가 살았다. 주변에 공원이며, 문화 인프라가 좋아 행복한 2년을 보냈다. 지금은 월세주고 있는데, 수리 좀더 잘 해놓았으면 좋을껄 그랬다.

-> 영끌해서 산 집 빚 갚는 데 10년이 걸렸다.ㅠ지금 생각해보니 빚 갚는 대신 갈아타기를 했어야 했다.


열번째집 : 해외 40평대 아파트(주재원)

남편따라 해외살이 하면서 처음으로 살아본 고급 대형아파트였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후진국이지만, 미국살이보다 좋았다. 종종 한국에 들어올 때면 갑자기 하층민이 된(?) 기분이 들곤했다. ㅠ

-> 다시 태어난다면, 나의 꿈은 '주재원 부인'이 되는 것이다..!


열한번째집 : 학군지 30평대 아파트(월세)

"학군지 30평대 아파트"는 사실 남편의 최종 부동산 종착점이자 오랜 로망 같은 것이었다. 자가는 아니었지만 월세로나마 학군지 30평대에 살아볼 수 있어 좋았다. 직주 근접에, 학군지에, 인프라에...뭐하나 빠지는 게 없었지만, 우리 가족한테는 아이 사춘기와 겹치면서 맘고생이 심했던, 사실 좀 우울한 집이었다.

-> 평수가 넓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걸 알았다. 방 4개 중 2개는 너무 작아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열두번째집 : 학군지 20평 아파트(월세)

매월 불로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20평으로 줄여 이사간 과정은 이미 브런치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초역세권, 초스세권으로 만족도가 높은 집이다. 이 집에 와서 아이 대학 합격 소식을 접했다. 맘 같아서는 실거주용으로 한채 사고 싶다.ㅎㅎ

-> 평수가 작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다. 관리비 적고, 청소하기 쉽다. 무엇보다 실거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동안 떠돌아다니느라고 돈도 돈대로 버렸지만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 거 같다. 큰아이는 지금 다니는 학교가 최장(3년) 다닌 셈인데, 이제야 비로소 안정감이 든다고 한다. 친구들은 3-4년을 살았어도 너무 짧아 정이 안간다고 말하지만, 자기는 2년 이상 산 곳이면 엄청난 애정을 느낀다고.




학군지 30평대 아파트에서 20평으로 줄여 이사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올해 우리는 12번째 이사를 하고 13번째 집에서 살게 예정이다. 그것도 이번에는 한가족 세 지붕으로. 큰아들은 기숙사에 들어가고, 우리 부부는 노후 대비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 잠시 주말부부가 되어 살기로 한 것이다.


평생 이사 다니느라고 인테리어나 멋진 가구에 관심을 끊은지도 오래. 언제쯤 집을 이쁘게 꾸며놓고 안정되게 살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마침내 정착할 '그 집'을 찾기 위해 이번 주말도 임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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