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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이야기

[13 사케와 편의점 안주 ]

by 은조

별거인 듯 별 거 아니었던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걸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그래서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이날의

그림을 기억을 더듬어 기록해보고자 한다.


누구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가장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에게는 학교와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개운하게 씻은 뒤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은 후, 엄마인 나에게 숙제 통과받고 친한 몇 명의 친구들과 페이스톡으로 얼굴을 보고 소통하며 게임하는 그 순간인 것처럼 이때 나에겐 하루종일 집안일과 아이들을 케어한 뒤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남편과 함께 그의 손에 들린 봉지 속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졌고 남편과 술 한잔과 간단한 안주를 먹는 것이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었다.


이날은 봉지 속, 평소와 다르게 맥주가 아닌 사케가 들어있어 더욱 설레는 기분이 더욱 들었고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닭발과 편의점 도시락 세트 속 안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가득 차 있어 퇴근 후 씻는 남편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평소보다 참으로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저녁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깰까 안방문을 살며시 닫고 우리 딴에는 조용히 이야기한다며 숨소리가 담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금세 원래 목소리로 돌아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땐 각자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 조절을 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웃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둘 다 똑같으면서 말이다


한잔씩 따라주며 한 모금 쭉 들이켜 마신 뒤 마음에 드는 안주를 골라 입에 넣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곤 주로 나의 입술이 먼저 떨어지며 남편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화 내용은 주로 우리 아이들인데 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주의 깊고 신중하고 흥미롭다는 듯 얘기를 듣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그 상대가 남편이고,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엄청난 행복감이 몰아쳐 오기도 했다.

술기운인가?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준비된 바닥 술상의 재료들이 사라져 있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냉장고 속 남아있는 맥주도 찾아보았지만 망설이다 다음날이 힘들 것을 떠올리며 자리를 정리한다.


그땐 그렇게 아쉽고 또 아쉽지만 다음날 일상을 하다 보면

그때 딱 정리하고 잔 게 잘한 행동이라는 것을 매번 느꼈다


내가 쉬는 몇 개월 동안은 이 패턴의 반복이었는데 이런 행복을 매일 누리다 보니 당연히? 살이 찔 수밖에 없게 되었고

원래부터 자기 관리가 철저한 남편은 살 빼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매일 저녁 운동을 하느라 더욱 늦게 집에 오는 남편과

이젠 새로운 직장에 취직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나와의 패턴이 맞지 않게 되면서 저녁엔 얼굴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때 그 소통의 시간이 너무나 그립고 생각나게 되었다


지금의 일상이 몸 생각하면 맞는 것이고 건강에 한발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 들지만 그에 비해 솔직히 행복과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이럴 때마다 남편은 우리에겐 즐길 수 있는 주말이 있다고 말하지만 큰 위로가 되어 돌아오진 않지만 그래도 지금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면 나중에 웃을 수 있는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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