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창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진짜 친구들이 있다.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 후로 가끔씩 한국에 방문했을 때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믿을 수 없게 친구 10명이 전원 참석하는 일이 생겼다. 우리는 매우 신이 났고 신논현역에서 정신없이 떠들고 먹고 술을 마셨다.
내 눈에 친구들은 아직도 중고등학교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가 벌써 사십 대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거리의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노는 걸 바라보면서 세월이 흘렀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본 자리여서 다들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모두 얼큰히 취했다. 술자리가 3차로 가게 되면서 각자 힘든 속사정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몇십 년을 알았는데도 처음 듣게 되는 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힘들었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미안하기도 하고, 다들 말할 수 없는 아픔들이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공황 장애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친구가 3명이나 되었다. 잘 때가 되면 숨이 막힌다는 얘기부터, 회사 바닥에 쓰러졌다는 얘기까지 그 병을 겪고 있는 친구들끼리는 그 고통을 잘 아는 듯했다. 나도 마음이 아팠다.
난 지금까지 친구들에게 내 아이가 자폐 중증이란 사실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이 날 모두들 각자의 어려움을 얘기하게 되면서 나도 용기를 내서 내 사정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는 거였다.
우선 나도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일 년 반 정도 되었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자폐 아이 때문이라는 말을 하니 한 친구는 너무 놀라 내 손을 잡았다.
모든 친구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몇 명은 눈물을 보였다. 한 친구는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자폐 애들을 한 시간만 옆에서 보는 데도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정말 힘들 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친구가 한 말이 날 울게 했다.
“너의 지금 얘기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삶, 그리고 우리 애들까지도 다 변화시킬 거야. 앞으로 자폐라는 장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거고, 너를 떠올릴 거고, 우린 이제부터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될 거야.”
이 말에 갑자기 난 너무 고마웠고 눈물이 흘렀다. 이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흐느껴 울었다.
맞다. 내가 원한 건 솔루션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나의 상황에 공감해 주고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한 번이라도 이런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수천 년 동안 꽁꽁 얼어있던 얼음이 갑자기 뜨거운 물에 닿아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난 친구들 앞에서 생전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고 몇몇 친구들은 같이 울었다. 난 계속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느덧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새벽이었다. 우리는 뜨겁게 포옹하고 악수했다. 난 마지막 작별 순간까지도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와 아내는 그동안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미국에서 수없이 많은 상처와 따돌림을 당한 후로 우리는 늘 외톨이였다. 주말의 텅 빈 집안에 늘 우린 혼자였고 마트에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누군가에게 같이 놀자고 연락하는 건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와 선물을 서로 챙기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자고 대놓고 말하는 엄마도 있었다.
아직도 어제 함께 울어준 친구들의 눈빛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아직은 포기하지 말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맙다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