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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Dec 18. 2017

우리는 왜 이렇게 빨라지기만 했나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은 여름방학.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동네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한 일이다. 필기시험은 기출문제만 몇 번 보면 쉽게 붙을 수 있다는 주변 얘기에도나는 학생 습관대로 열심히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었고, 90점의 높은 점수로 무난하게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론과 달리 기능과 도로주행은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해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단기에 획득한 운전면허증은 (간간히 아빠와 함께 동네에서 운전대를 잡긴 했지만) 한번도 제 빛을 내지 못하고 10년이 지나 갱신까지 하면서도 지갑 속에만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푸드트레일러 영업이 끝나면 길가에 세워둔 차를 가져와 트레일러를 장착하고 주차장으로 끌고가야 한다. 하루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데이빗이 청소하는 사이에 그 옆에 세워둔 차를 내가 트레일러로 가져오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정리하는 시간을 줄이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데이빗이 안된다고 했는데도 차키를 손에 쥐었다.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이고 이미 늦은 시간이라 차도 많이 없었다. 일방통행 골목길이기 때문에 속력을 높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차키를 꼽았고, 손에 땀을 흠뻑 흘리며 운전대를 잡았다. 고비라고 생각했던 코너를 한번, 두번 무사히 돌고,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할때쯤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라이트 켜는 법을 몰랐고, 뒤에 쫓아오는 차가 있어 라이트를 켜기 위해 길 한복판에 차를 세울 수도 없었다. 고지를 바로 앞에 두고 그대로 전진하는데 퍽!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어 도로가 살짝 꺽여있는 걸 보지 못하고 경계석을 들이박았다. 


사람이나 다른 차량과 부딪힌게 아니라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경계석과 부딪힌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큰 소리를 듣고 달려온 데이빗은 펑크난 타이어를 보자마자 트렁크에서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 그 자리에서 교체하려고했다. 하지만 일차선 일방통행길 한복판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뒤에 늘어선 3-4대의 차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길 중간에서 뭐하는 거야. 어서 차를 옆으로 빼야지!


그 아저씨들이 하는 말을 데이빗에게 얘기해줘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어가 펑크 났는데 어떻게 차를 빼?
저 사람들 통행을 방해하고 있잖아. 저기 옆으로 살짝 옮기면 되지.


데이빗은 꿈쩍도 안하고 계속 타이어를 빼려고 공구를 돌리고 있지, 아저씨들은 계속 나한테 성질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나만 애먹었다. 결국 데이빗을 설득해 굴러가지 않는 차를 가까스로 옆골목에 세우고 보험서비스를 불렀다. 서비스 기사는 차밖으로 나와있는 스패어타이어와 스패너를 보더니 이걸 혼자 하려고 했냐며 놀라워했다. (사실 데이빗이 펑크난 타이어를 빼려고 시도는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더 전문적인 기구로 빠른 시간안에 타이어를 갈아주고 떠났다.


상황이 진전되고 데이빗에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 성격 급한거 알잖아. 나라도 그 상황이라면 길 중간에서 뭐하냐고 화냈을거야.
그래도 바퀴가 펑크났는데 어떻게 차를 빼? 알아서 돌아가면 되지.
브라질에서는 이런 상황 생기면 아무도 뭐라고 안그래?
응. 차 빼라고 하지 않고 하나 둘 몰려와서 타이어 교체하는거 도와줄거야.


머리가 번쩍했다. 그렇구나. 차에 문제가 생겨 도로 한복판에 멈춰 있으면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도와줄건 없는지 물어보는게 당연한건데. 아무도 이런걸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빨리 이 길을 떠나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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