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난과 위기는 착각이며 꿈과 같은 것이다.
지난 9월 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친구가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나도 그가 입원한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폐에 물이 차서 갈비뼈 사이로 구멍을 뚫어 고무호스를 끼운 후에 이를 폐로 연결하여 고인 물을 몸 밖 호수 주머니로 빼어내는, 이른바 ‘포크테일( Pork Tale)’ 시술을 두 번이 나 받았다.
물이 폐에 차오를수록 서서히 숨이 막혀오는 공포는 마치 수렁에 빠진 몸뚱이가 진흙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지독한 공포 그 자체였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할까? 나는 그가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하얀 바탕에 초록 줄무늬가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호흡기를 차고 있는 모습은 몇 년 전, 암과 싸우며 지쳐있던 나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는 대장암 수술 결과가 좋아서 두세 번의 항암 치료만 마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살겠다고 내게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러나 병원을 다녀온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무렵, 그의 악성종양이 장에서 폐로 전이되었다는 마른 벼락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는 “폐로 전이된 암세포는 다른 장기로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는데, 의사는 아직 수술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라며 병원과 의료진을 향한 원망을 쏟아냈다.
그의 울분 썩인 하소연을 들으면서, 나는 그의 병세가 의사마저 치료를 포기할 만큼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세상과의 싸움에 패배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그 이유를 나 자신의 부덕함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이익 극대화를 명분으로 협력업체와의 모든 거래를 전면 금지한 방침이 오히려 적자를 확대할 것임을 확신한 나는, 그 정책의 조속한 철회를 요청하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그 일로 회사 내에서 미운털이 박혀, 끝내 사직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순수한 애사심에서 나온 고언을 사장은 경영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집사람도 오랜 고민 끝 내린 나의 결정을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가장의 책임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몰아쳤다.
솔직한 마음이 반복해서 무시당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모든 결정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면서도 무력했고,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의 원인을 세상 탓으로만 돌렸을 뿐, 문제의 본질이 현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내면의 어리석음, 곧 ‘우치(愚癡)’에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남을 원망하는 동안 정작 내 마음속 어둠을 외면했다. 결국 마음의 흐름이 어긋나자, 몸의 조화도 깨졌고, 그 불균형이 마침내 암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대장암과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 원인도 마음에 든 멍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친척 집의 식모살이를 하는 대가로 그 집 방 한 칸을 빌려서 아들과 딸을 길렀다. 이런 환경에서 세 식구는 매끼 눈칫밥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마치 인도의 불가촉천민처럼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몸을 움츠린 채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60대가 될 때까지, 지체 부자유자인 누나를 요양 시설에 보내거나 결혼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집안 살림을 돌보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고된 나날을 묵묵히 견뎌냈다.
세상에서 낙오자로 살아간다고 해도, 누나의 행복만은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과 의리 그것이 어쩌면 그에게는 숙명처럼 각인된 신념이었을 것이다.
그는 중병에 걸리고 나서야 누나를 요양시설에 보내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것이 그와 누나 모두를 위하는 올바른 길이었음 깨닫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사지를 못 쓰는 이 가련한 여인을 돌본단 말인가? 또한 이 늙은 여인은 평생 믿고 의지 해온 유일한 피붙이 동생을 잃은 슬픔과 충격을 어떻게 견뎌낸단 말인가?
결코 남을 해 코자 한 적이 없으며 나름 인간답게 살려고 몸부림친 결과가 암이라는 중병이라니, 하느님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조금씩 어둡게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이 차올라 발걸음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절실한 기도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참선에 들었던 내 시야 속에 그와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 형상은 순수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무지와 집착에 갇힌 어른의 얼굴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불쌍한 오누이의 운명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 병들어 신음하고 있던 또 다른 나였다. 내가 흘린 눈물은 연민이 아니라 자각이었다.
불쌍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끝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훈습(薰習)과 기도가 수반되지는 않는 착한 마음은 아상(我想) 일뿐 진짜 마음이 아니며, 모든 중병의 원인은 진짜 마음속에 내재한 탐진치(貪瞋癡)가 표출된 것이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었을까?
우연히 김원수 법사의 ‘절체절명의 위기 탈출법’이라는 설법을 듣고 그에게 보내줄 마지막 편지를 작성할 수 있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형상 있는 모든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원수 법사에 의하면 모든 고난과 위기는 인간이 창조한 꿈속의 착각이며 분별 망상일 뿐이다.
상기 사구게를 수지독송하고 이를 진실로 믿으면,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우리들의 깊은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부처님 마음을 만나서 모든 고난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금강경을 단 한 줄로 축약해 놓은 위대한 문구다.
직면한 위기를 우리 마음이 창조한 가상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객관적인 실체로 받아들이는 한, 위기는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이며 도저히 넘지 못할 태산일 뿐이다.
꿈속에서 한강 위에 놓인 외길 철도를 홀로 중간 정도 걸어가도 있을 때, 갑자기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와 맞부딪쳤을 순간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뿐이다.
혹자는 “어떻게 실제로 발생한 위기를 꿈으로 받아들인단 말이오?”라고 물을 것이다. ‘믿음과 선택’이 그 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가 꿈이라는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은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든 수행자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꿈이다.
“친구여! 인제 그만 슬픔을 거두시게. 본래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분별심이 만들어 낸 착각이라고 믿고 또 믿으시게.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하지 않는가? 꿈에서 깨어나면 그대는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겠는가?”
2018년 1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