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푸린 하늘이 살갗을 파고드는 냉한 바람을 부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서릿바람이 휘감는다. 메마른 땅, 휑한 광야에 비틀비틀 걸어가는 나그네는 정처(定處) 없다. 뒤를 따르는 굶주린 늑대, 둘 중 하나는 요기일 터다.
상대를 넘어트릴 힘도, 쫓을 용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은 아가리를 벌려 어서 오라 포효하는 암굴 속으로 자발적 순종자가 되어 기어든다. 갈빗대가 굴곡을 이루는 늑대가 뒷다리를 바들거리며 뒤를 따른다. 순간 목적이 같은 동행이 되었다.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아가리에 물어뜯을 힘이라도 남아 있을까. 단언컨대 그곳에서 구더기 밥이 되고 거룩하기 짝이 없는 미생물의 힘으로 이승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살았던, 어떤 신성한 목적과 뜻을 세우고 시간을 알뜰하게 보냈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너의 쓸쓸하고도 가련한 주검에 누구도 책임지는 이 없을 것이다.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이 더더욱 없을 것이다. 자발적 죽음이든 멍청하게 떠밀린 죽음이든, 이 모든 게 과거 열락만을 추구하던 너의 결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자에게 기생하면서 굴종도 마다치 않은, 그따위 삶을 살지만 않았다면, 겨울잠에서 깬 곰의 간식거리가 되더라도 그만하면 됐다. 앙상한 슬픔의 뼈만 남았더라도 멋진 주검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으리라.
자연의 절대강자 발길이 닿지 않은 잡목 우거진 숲, 인간의 눈에 하등에 쓸모없는 활엽수, 비탈진 기슭에 등 굽은 떡갈나무, 껍데기가 알몸 같아 서럽기 짝이 없는 서어나무도 덩달아 계절을 탄다. 재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여태 형태를 고수하며 발악해도 상관없다. 변색을 당연시 여기자 탈색이 되고, 작은 바람에도 기다렸다는 듯 가차 없이 떨어지며 산비탈에 쌓였다. 삭풍이 분다. 꽁꽁 언 숲은 타래송곳을 앞세우며 달려드는 소소리바람에 알몸으로 맞선다.
뜨거운 기운이 솟는다. 낙엽이 층층이 쌓인 깊숙한 그 아래서 외로운 주검이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참 장엄한 광경이다. 이른 봄날이 되면, 너도바람꽃으로 태어나리라.
그랬다. 지배자가 던져주는 먹이에 꼬리 흔들며 맹목적으로, 술이 벗인 양 살아온 시간이 나를 별 볼 일 없게 만들었다. 어떤 굴욕도 느슨한 온화함으로 흡입하면서, 굴종이 멋인 양 대단히 만족스러운 착각 속에서, 가진 자의 찬사에 당당하게 감읍하면서, 하늘 아래 새끼손톱만 한 거리낌도 없다 생각하며 살아왔으면서도, 끝끝내 거품을 물고 인생철학이라 우겼다.
결론을 위한 독백이 끝났다. 이렇게 큰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다행이다. 먼지가 떨어지는 소리 대신 오만가지 환청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결론을 내린다.
‘그래! 이름을 포기하는 순간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나의 욕망덩어리 미래를 포기하는 순간 자유의 바람을 유영하며 하늘을 나는 새가 된다. 집착하던 현실의 끈을 놓는 순간 나는 새로운 자유와 마주할 것이다. 사회에서 눈곱만큼 차지했던 입지를 버리는 순간 나는 광야를 내달리는 길들지 않은 야생마가 된다.’
나를 마취시키듯 용기백배. 따로 살자.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며 콘크리트 밀림을 내달리자. 꿈꾸듯 탁한 회색빛 하늘을 날자, 가슴에 품었던 청춘의 건배는 고사하고, 늙어 추함에서 발버둥으로 벗어나 야생으로 돌아가자. 겉치레 따위야 품위를 위장하려는 것뿐, 도시 남자의 갑옷이라는 허영의 껍질 양복 따위도 벗어버리자. 그러나 무엇보다 성급한 행동은 금물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은 만고의 진리다.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으나, 추억으로도 남길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이다.
*
회자정리의 시간, 생각에 정리가 끝났다. 순서가 뒤죽박죽되지 않게 행동이 필수다.
일 단계, 침묵은 금이다. 일단 소낙비는 피하고 보는 거다. 모임에 참석해 수다를 동반한 식탐에 이어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리고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 집으로 왔다. 비틀대는 꼴을 두고 볼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뭐라고 하여도 거실 바닥에 모래성 허물어지듯 드러눕는 인간을 상대로 대화하려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다. 나는 잠에 빠진다. 뱃살공주의 유리잔 깨는 듯한 목소리 자장가 삼아서 심연 속에 든다.
이 단계, 비틀기다. 무거운 몸뚱아리 일으켰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떴다. 이미 뱃살공주가 집을 나갔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 전날 밤, 천하를 호령하던 만용의 끝은 결국 바닥을 긁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본능의 촉수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라고 재촉하였다. 그래봤자 어제 카드 긁은 확인 문자뿐임을 안다. 크든 작든 어차피 벌어진 일, 술 마신 다음 날 전날의 행위를 후회한다면 정신건강에 치명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상태라는 뜻이다. 비몽사몽 아내에게 톡을 보냈다. 만용과 객기가 뭉쳐 자가발전을 거듭한 까닭이다. 내용인즉슨,
‘내가 뭘 그리 잘했냐? 내가 뭘 잘했는데 그리 야단이냐? 엉!!!’
뭐 하여튼 이따위 내용으로 이모티콘을 섞어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잘못했다는 말이 아닌가! 미련한 인간이라 자책하면서 어떡하든 앞 문자를 수습해야 했다.
‘내가 인류 폭탄 제거반이냐? 하필 나만 당신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지 그동안 너무 억울했다. 당신처럼 예쁜 여자를 나 혼자 데리고 산다는 것은 인류 남성들에 대한 폭력이다. 암, 강도나 마찬가지지. 미인을 아내로 둔 남자는 범죄자라는데.ㅋㅋㅋ’
보내고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이따위 글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재차 쪽팔렸다. 그러나 평화가 우선이었다. 아~ 씨! 마지막 문장은 보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머리끝에서 발뒤꿈치까지 바람이 통과하는 듯하다. 마지막 버팀 자존감이 허물어지는 느낌, 하체에 힘을 풀어버린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술독이 남아 피곤이 몰려들었다. 재차 기절한 듯 잠에 빠졌다. 한 시간쯤이 지났나? 눈을 비비며 일어나 톡을 열었다.
뱃살공주께서 하루 종일 톡을 열지 않았다. 삭제하려 했으나 내 전화기에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일단 주린 배를 대충 채웠다. 떡과 대가리 떼어낸 콩나물, 고추장까지 칼칼하게 풀어 넣고 해장라면을 끓였다. 김장 김치와 함께 우걱우걱 씹어 밀어 넣고 나니 이마에 좁쌀만 한 땀이 맺히면서 좁쌀만큼 세상이 드러났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후루룩 넘겼다. 설거지 후, 안방 침대 정리, 냥이 치다꺼리를 마쳤다.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고슬백미를 누르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밥맛이 좋아지라는 나만의 주술이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어젯밤 기고만장했던 허욕의 표피를 벗겼다.
삼 단계, 순한 양의 탈을 쓰다. 컴에 앉아 하루를 반성하고, 미래를 위한 나만의 설계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심장에 북소리가 울렸다. 진동이 정수리 닿자, 위기를 감지하는 촉수가 꿈틀대며 현실을 직시하라 다그쳤다. 그 순간 톡이 떴다. 변수가 생긴 것이다.
렘브란트 판화전. 아내 사스키아(대구미술관 전시)
그린피스 부산 행사 참석 확정 통지서가 날라 왔다. 3일 뒤, 토요일 오후다. 몇 달 전에 뱃살공주와 함께 다정하게 신청했던 터였다. 악마의 문자인가, 사랑의 큐피드인가? 아니면 반목과 불화의 신 에리스가 때를 맞춘 것인가.
연이어 또 다른 톡이 왔다. 오해가 곡해를 낳자 잘못 알려진 나의 능력을 나보다 더 높게 평가한 분들이었다. 언론사에서 주최하고, 지방정부가 후원하는 수필공모전 심사 일정이 잡혔다. 금요일 오후, 때마침 두 명의 처제가 살고 있는 도시다. 내 능력 따위와는 하등 상관 없이, 사색의 부스러기, 진리의 부산물 문장과 문학과 삶이 뒤죽박죽 뒤엉킨 판에 옥석을 가려 줄 세우기가 끝나면 저녁 시간이 빈다.
이를 잘만 이용하거나 응용하거나, 광고 기획하듯 연출한다면 반전의 미학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이 내 편인지 아닌지 실험해 볼 기회였다. 내 지혜로움이 어디까지인지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