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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Nov 09. 2023

prologue

아침에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나는 프리랜서다. 나이가 많은 자에게 이 말은 곧 실업자란 뜻이다. 규모의 경제 한계가 뚜렷한 지방 도시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감이 그리 많지 않아서고, 또한 팽팽 돌아가는 젊은 친구들 치고 올라오는 데, 머리에 서리가 내린 필자가 경쟁하기도 지친다.      


여전히 서드 에이지(Third Age)라고 확신한다. 10여 년 몸과 마음마저 자유롭게 지내다가, 재차 만 10년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이도 출퇴근이 내 마음대로인 조건으로 쥐꼬리 급여를 선택하였다. 급여를 덜 받더라고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재차 프리한 몸이 되길 올해로 5년째다. 이쯤 되면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뱃살공주라 부르는 마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뜻이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자존감은 여전히 하늘을 찌르는 나로선 늘 아내와 팽팽한 긴장 상태가 유지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간혹 집에서 키우는 냥이 두 놈에 의해 대화가 유지되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연애 5년, 결혼 33년 차 부부가 애증의 관계로 변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곤하긴 나도 마찬가지라 좋은 게 좋다고 알아서 처신할 때가 훨씬 많다. 냥이 치다꺼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싱크대 밀린 설거지는 기본이고, 뱃살공주마마의 침대 정리는 옵션이다. 밖에서 돌아왔을 때 아주 잠깐이라도 기분 좋아지라고 재롱떠는 수준이라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늘 새로운 삶과 마주하였다. 이 말은 항상 초보 인생이었다는 뜻이다. 초보 회사원, 초보 신혼살림, 초보 사위, 초보 아빠, 초보 중년, 초보 장년, 초보 노년(?)에 접어들었다. 과거 경험이 지혜라고 하더라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른 살 전에는 두려워 말고, 서른 살 후에는 후회하지 말라고 하더라만, 단언컨대 돌아보면 후회뿐인 삶은 변치 않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풍류를 핑계로 과거를 허비하였던 삶은 이제 낡고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변했고, 돈을 목적으로 살아왔던 과거는 삭막한 정서에 먼지만 폴폴 날리는 주머니가 된 지 오래다. 남보다 앞서 달리려 애쓰던 기억은 조급증만 키웠으며, 쾌락을 문화 향유라며 자위하던 때가 살이 되어 돌아와 흉년으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편률 된 시선으로 세상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변화도 있다. 지혜롭게도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였다. 친구를 만나거나, 혹은 사회 벗과의 술자리도, 동기동창 모임도, 문학단체 모임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혼자가 좋다. 외로움?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놓는 푸념이다. 고독해지자. 그리고 즐기는 거다. 인간은 지성인일수록 고독하다고 한다. 심심하면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춤이라도 추자. 책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운동이라도 하자. 대신 인근 공원을 배회하면서 장기나 바둑 두는 사람 옆에서 구경꾼이 되지는 말자. 삼대 바보 중 세 번째이다. 초상집 개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였다. 매일 아침에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린다. 아내가 돌아올 때가 다가오면 내 가슴이 두근댄다. 이처럼 ‘두 근반 세 근반’ 리듬을 타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온몸의 피가 질량이 높아지면서 긴장상태에 돌입하고, 머리에 보이지 않는 촉수에는 빨간불이 켜진다. 부디 밖에서 즐거운 일만 가득하길 진심을 담아 빈다. 즐거운 경험은 아내 입에서 침을 튀게 하고, 반대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날 저녁이면 내 입에서 거품이 벅적벅적 뿜어진다.   

   

아내가 돌아왔다. 손에 맥주 캔 박스가 들려 있다. 시장바구니가 빵빵하다. 나도 모르게 쾌재를 부른다. 오는 길에 사 왔다며 새우가 가득한 피자 한 판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일순간에 내 몸의 피가 묽어지는 것을 느낀다. 조금 있으면 아내 입에서 침이 튀겠구나!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나는 오늘부터 공리주의자가 되어야겠다. 내 정체성의 핵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시간의 실향민이 되어서야 어디 될법한 말인가. 선험적 경험이 지혜라니 어디 한 번 믿어보기로 한다. 기적을 믿지 않는 자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다. 결과가 이따위라서 그렇지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오니 아내가 벌써 집을 나갔다.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든다’고 한다. 또 그가 한 말이다. ‘미인을 아내로 둔 남자는 범죄자다’     


콧노래를 부르며 아내 침대를 정리한다. 이제 이 집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물론 그리 길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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