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프리랜서의 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이가 많은 자에게 프리랜서란 곧 실업자란 뜻으로 해석한다. 팽팽 돌아가는 젊은 친구들 치고 올라오는 데 머리에 서리가 내린 필자가 경쟁하기도 지치고, 중간 기획사나 출판사들 덤핑이란 폭력에 맞서 핏대에 콧대까지 세우다 보니 이 계통에서 고집으로 이름이 굳었다.
10여 년을 자유롭게 지내다가, 기회가 찾아와 만 10년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그동안 자유를 누린 것보다 엄청난 작업에 시달려야 했다. 주로 경상북도 23개 시․군(울릉도 포함)을 대상으로 답사와 취재란 명목으로 지구 둘레 약 40만km를 두 번 은 돌았을 법했다. 그래서 나온 스토리텔링 책들이 20여 권이 넘는다. 150페이지부터 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책(백서나 고등학교 100년사 같은)도 많이 다뤘다. 따라서 연말에 성과급이 두툼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프리한 몸이 되길 올해로 5년째다. 반대로 가정은 자연스레 아내 책임감이 중해졌다. 아내가 아침 6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밥해놓고(찌개나 국도 끓여놓을 때도 있다), 8시가 되면 말끔하게 단장 후 집을 나간다. 정신이 말짱하게 살아 있는 남편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냥이 두 놈에게 나간다고 인사를 한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현관문 여닫는 소리와 동시에 스트레칭을 시작하고 일어나 침대 정리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기획한다. 계획이란 일정이 바쁜 인간들이나 세우는 것, 나와 같이 늙은 프리랜서는 기획이라 우긴다.
간혹 아내보다 일찍 일어나 인근 공원에 아침운동을 나갈 때도 있다. 자전거 타기, 허리 돌리기, 상체 근육 키우기 등 대략 5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다. 버릇처럼 식탁 위나, 가스레인지에 뭐가 놓였는지 확인한다.
이제부터 집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이때 가장 반기는 놈이 귀염둥이 냥이 두 녀석이다. 물론 간식 주는 것 잊지 말라고 다짐하는 애교지만, 싫지 않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대화를 한다. 정신 승리,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서다. 놈들 밤새 싸질러 놓은 것들 정리하고, 간혹 화장실 패드 갈고, 사료 그릇 말끔하게 씻어서 잘 말려 뽀독뽀독 소리 나는 사료를 대령한다. 집안 곳곳에 있는 물그릇도 헹궈서 신선한 물로 갈아주고 나면 허기가 밀려온다.
밥 챙겨 먹는다. ‘잠은 혼자 자더라도 밥은 혼자 먹지 말라’던 생전 어머니 말씀을 매번 거역하는 중이다. 싱크대가 아우성이다. 큰 냄비, 작은 냄비, 밥그릇 국그릇, 수저, 반찬 접시에 설거지 꺼리가 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야가 어지러워도 순서가 있다. 집사가 아침을 먹고 나면 다음 차례는 응당 나라는 듯 큰놈 카니(12살)가 지치지도 않고 양냥거린다. 버릇도 더럽게 들여놨다.
봉지 간식 큰놈 작은놈 순서대로 하나씩 줘야 한다. 만약 반대로 작은놈 호두부터 줬다면 큰놈은 슬픈 표정으로 구석진 곳에서 앞발 바닥을 위로해 얼굴을 묻고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볼 때마다 참 신기한 놈이다. 욕심도 엄청나 비싼 사료 씹지 않고 삼켜 그대로 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정말 밉다. 어쩌다 혼이라도 내면 기가 죽어 슬픈 표정으로 침대 밑에서 외면한다. 이때 반드시 안아서 가슴으로 달래줘야 한다.
오전 일과를 상쾌하게 시작하려면 밀린 설거지, 즉 싱크대 정리가 우선이다. 건조대에 있는 빈 그릇들 제자리에 찾아 넣고 난 후 공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작은 그릇부터 큰 냄비 순서에 맞게 씻어 엎어 놓는다. 아주 큰 냄비는 깨끗한 행주로 물기를 닦아 곧바로 제자리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음식물 찌꺼기 모으고, 바닥까지 박박 문지른다.
주변에 흩어진 물기마저 훔쳐낸 후 물기 하나 없는 싱크대를 보면 대번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가스레인지 주변 청소를 시작한다. 음식물이 묻어 있거나 얼룩이 있으면 물휴지로 박박 문질러 광을 낸 후 마른행주로 말끔하게 닦아야 내 마음도 빛이 나는 듯하다. 이때 음식물 파편이 튈 수 있는 뒤편 벽면도 박박 문질러 기름기를 닦아낸다.
이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찾았다. 그런데 잠이 온다. 드립커피, 녹차를 비롯해 작두콩깍지차, 인삼 꿀차 등 건강을 위해 우려 놓은 물도 있어 시시때때로 다양하게 선택한다. 주로 잠이 올 때는 녹차, 그리고 급한 원고가 있을 때는 베트남 다낭서 사기 당해 비싸게 산 커피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헤이즐넛 향이 집안에 퍼지는 이때가 참 좋다.
투 샷으로 만들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천천히 음미하며 메일을 열고, 브런치 스토리를 연다. 글 읽고, 추천 누르고, 댓글 달다 보면 냥이들이 옆에서 놀아 달라, 안아 달라 귀찮게 한다. 이건 뭐 완전 개냥이다. 애써 무시하고 글 창고에서 예전에 쓴 글 찾아 퇴고를 거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