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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관점이 바뀌면 집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뀐다

영국 주택 구매하면서 인생 2막을 상상하다

by 김명주 Oct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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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이사 온 지 6개월 지난 시점,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코비드 시국이 시작됩니다.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총리가 TV에 나와서 락다운을 따르지 않으면 수십 만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루에 딱 한 시간만 식약품 같은 필수재 구입 또는 운동을 위한 외출이 허용되는 초유에 상황이었지요. 친구랑 커피 한잔 마시며 공원 걷다가 경찰에 범칙금 물어서 너무 억울하다는 인터뷰가 BBC 아침 뉴스에 나오고는 했었어요. 그러더니 다음 해 7월에는 경제 부총리가 버거집에서 서빙하는 를 하면서 집에서 나와 외부에서 식사하면 그 금액의 50%는 정부가 내주겠다고 한시적 캠페인을 합니다. 요양원에서 몇 만 명이 코비드로 세상을 떠났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는 때에 말이지요. 용기 내어 마켓에 나가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막 이민 와서 정착하려는 제 입장에서는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은 때였습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방역 모범 국가로 연일 뉴스에 나옵니다. 우중충한 겨울 날씨와 겹치면서 몇 번이나 짐 싸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 짐 싸기 전에 백신이 개발되고 대국민 백신 접종도 빠르게 진행되어 일상으로의 회복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이곳이 계속 내가 살아갈 곳 인지 아닌지 마음의 시소를 타고 있는데, 세계 부동산 추세가 그렇듯 영국도 주택 가격이 그 기간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야속한 마음도 듭니다. 이렇게 가격이 막 오르는 시기에 추격 매수하지 말고 월세 내면서 살자 했습니다. 부동산 업자들도 배짱 영업 중이라 전화 피드백도 없고 추격매수하는 구매자가 바쁜 완전한 셀러마켓(파는 사람 위주)이었습니다.   


 

이제는 이곳 생활 4년 차. 아이들 학교와 생활 기반이 안정되었고, 사회적 동물인 제 자신도 현지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졌습니다. 올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은행마다 이자율을 높이면서 끝 모르게 오르던 부동산 가격 상승 추세가 꺾이더니 급매의 경우는 2019년도 코비드 이전과 비슷해진 가격대의 물건들도 보입니다. 마침 개인적으로는 다른 곳에 있던 작은 수익형 부동산 매도가 되기도 했고, 이참에 대출을 좀 받아 집을 사볼까 싶어서 이곳저곳 둘러보고 다니고 있습니다.


 

아파트나 콘도와 같은 부동산 매매 경험을 하던 나에게 영국 주택시장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입니다. 지은 지 백 년이 넘은 집들이 수두룩하고, 마당이 달린 집들인데 그 대지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무엇보다 여기는 보증금 제도가 없네요. 우리나라는 집 구매의사를 밝히면 보증금을 걸어 계약을 확실히 책임지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8주에서 12주 정도면 거래가 완성됩니다. 반면, 영국은 사고 싶다 구매의사를 밝히면 12~16주간 서류 작업을 거쳐 매매가 이뤄짐은 비슷하지만, 매도자든 매수자든 그 기간 동안 얼마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실제로 없습니다.  


 

몇 년 전 시부모님은 아들 넷을 키워낸, 이제 두 분이 사시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집을 매도하고자 하셨습니다. 삼십 년 넘게 살아 온 집을 시장에 내놓는 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지요. 어려운 마음의 결정을 하고 집을 시장에 내어놓은 지 2년 후, 매매를 포기하셨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간 2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다 중간에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구매자의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서 포기된 경우, 다른 한 번은 구매자의 배우자가 사망하는 상황이었다는 전언입니다. 사유가 납득할만했지만, 매도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매도 가격으로 부족한 연금을 보충하고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셨거든요. 결국 시부모님은 집을 국가에 담보하고 사망 시 나라에 귀속되는 조건으로 매달 일정 금액의 연금을 받는 방식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지만, 매도 후 세계 여행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요.  내가 첫 집 구매하는 사람이라고 밝히면 부동산 중개인들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마도 시부모님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매수자로서 나의 장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 뷰잉을 다닌 지 어언 6개월이 넘어갑니다. 이자율 높을 때 집을 사려고 하니 빠듯한 예산에 맞춰 최대한 좋은 집을 사고 싶어 고군분투 중이지요. 집마다 장단점이 있으니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 가고 싶은지 뷰잉 할 때마다 더 분명해지고 뾰족해지는 경험 중입니다. 부동산 중개인들이 전에 없이 적극적인 것을 보면 시장의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지난주 마음에 드는 집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집이 오래되고 낡기는 했지만, 햇볕이 잘 들어 채광이 좋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 통학하기 좋은 위치입니다. 문제는 집수리를 해야 하는 집입니다.


 

영국에서 사람 손이 닿기만 하면 가격이 무척 비싸집니다. 하물며 집수리를 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공사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릅니다. 백 년 넘은 집이 수두룩하니 집수리 전문가들은 항상 스케줄이 꽉꽉 차 있습니다. 한국처럼 계약서에 기입된 기일에 잘 맞춰 공사하는 방식이 아니고, 약속한 공사를 잘 마무리한다는 성격의 계약입니다. 중간중간 발생하는 일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시아주버님이 최근 집공사를 하시면서 6개월 예상했다가 1년 만에 완공하시더니 다시는 수리하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수리해야 하는 집은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구매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십 년여 이민생활동안 언제든 이동해야 한다면 미련 없이 이사 떠날 수 있어야 하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매번 월세 내는 집이었지요. 아이 낳고 일가를 만들어가던 시절, 잠깐 자가를 구매했었지만 이사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 이후부터는 부동산을 수익 목적으로만 고려했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들어가 살  자가를 구매합니다. 집을 볼 때 우리 생활 리듬에 맞출 수 있을지 고려하고, 어떻게 편안한 내 집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니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바뀝니다. 이 과정이 낯설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집을 구매한다는 것은 이제는 이곳의 거주인이 되겠다는 제 결심이 섰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분명히 인생의 다른 한 페이지를 다져가는 시기에 들어선 것이 맞습니다.


 

지난주 마음에 들던 집 구매 의사를 넣어 놓은 상황인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에 대한 사유를 충분히 부동산 중개인에게 설명했고, 중개인이 매도자를 설득하는 과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매수가격으로 제시한 금액이 매도하시려는 분의 기대 가격보다는 낮은 수준이거든요. 집을 구매할 때는 물건과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기에 지금도 다른 집들을 보러 다니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 집 생각하면서 어떻게 고칠까 상상하고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혼자서 집수리하기' 초보 강좌를 수강 중에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빨간 벽돌 쌓기 연습을 했네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기도 하지만, 원래 줄 맞추고 각 세우기 좋아하는 저에게 새로운 취미생활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집에 손맛을 더해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뤄내는 가치를 만들어가 보고 싶은데, 이 집이 저에게 올까요? 독자 여러분, 행운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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