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예전보다 단풍이 곱지 않다고 한다. 서서히 짙고 붉게 변해야 할 단풍이 추석이 지나서도 식지 않은 더위로 제대로 물들지 못했다. 11월 초까지도 봄날 같은 날씨가 계속 되어, 단풍 축제를 앞두고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정말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던 때가 있었다. 단풍 구경을 가지 않아도 온통 빠알갛게 물든 가로수 단풍에 눈이 호강했는데 올해 단풍은 예쁘게 물들기도 전에 갑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벌써부터 떨어지기가 바쁘다.
그럼에도 떠나보내기 아쉬운 가을을 누리러 강화 화개 정윈과 청주 청남대로 한 달새 두 번이나 단풍 구경을 다녀왔다. 화개 정원은 지인들과 당일로, 청남대는 친구들과 일박으로 다녀온 여행이다.
강화도 교동에 위치한 화개 정원은 40분 정도 오르면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전망대가 나온다. 확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니 중간중간 불쑥 올라온 작은 섬들이 거제의 다도해를 연상케 했다.
전망대로 가는 길엔 울긋불긋한 꽃들로 둘러쌓인 정원,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하얗게 핀 구절초, 은빛 자작나무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나무 데크길과 어르신들을 위한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둘러보기 편하게 잘 조성된 정원이다. 가을답지 않은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다보니 가을이 품에 안기는 듯했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 란 뜻으로 대통령들의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라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 관람로가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어 그 크기에 놀라고 경치에 취했다.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은행잎들이 비처럼 쏟아져 가을 정취에 흠뻑 젖었는데 숲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을 축제를 맞아 전시된 국화 정원과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메타세콰이어 길, 대청댐 주변으로 흐르는 잔잔한 호수, 호수 주변에 춤추는 갈대와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오각정을 깃점으로 한바퀴를 돌고 다른 코스로 올라가니 또 다른 정경이 펼쳐졌다. 구절초와 노랑 분홍 소국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길목엔 선홍빛 단풍과 노란빛으로 절정을 맞은 나무들이 즐비해 있었다. 청와대 본관을 축소해 만든 전시관이 있고,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다보니 출렁다리가 나왔다. 조금 더 오르면 전망대가 있지만 그곳에서 돌아내려왔다. 내려오니 눈앞에 은행잎으로 뒤덮인 황금빛 길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자연이 빚은 작품이고 우리에게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산책 세 시간 동안 지루한 줄 몰랐다. 만이천 보를 걷고도 발걸음이 가볍고 가을을 놓칠 세라 사진속에 담기 바빴다. 50대 중반인 30년지기 친구들은 여전히 소녀 감성으로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어대며 행복을 안고 왔다. 종일 함박웃음을 짓고는 짙어지는 단풍만큼 우리 우정도 깊어진 듯했다.
사계절 중 봄이 따스함과 포근함을 전해준다면 유독 더 신비함과 신묘함을 주는 가을이 아닌가 싶다. 왠지 모르게 취하고 빠지게 하는 매력덩어리 가을을 제대로 만끽했다. 그 여운은 다가올 겨울의 차가움과 고독함을 견디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