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철도공무원이었다. 평생을 기차와 함께 하였다. 덕분에 기차는 나에게 어릴 적 추억을 소환시키는 매개체이다. 아버지는 격일제 근무를 하였다.근무-휴무-근무였다. 그래서 난 아버지를 이틀에 한 번 보았다.아침에 출근하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해 집에 왔다. 그런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그는 근무-근무-근무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 집은 간이역 중 하나인 주역(酒驛)같았다. 그로 인해 어머니,형, 내가 탄 철로는 안정-불안-안정의안불선이었다. 난 그가 휴무 때마다 술을 즐기며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불안-안정-불안의 불안선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느낀다. 그가 탄 철로는불안-불안-불안의 불불선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불안 속 30년 넘는 연중무휴 근무를 하셨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되고 힘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집에서만큼은 인생의 주역(主役)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족이라는 철길 위
위태로운 폭주기관차들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집은풍비박산 났다.그때마다 어머니의 슬픔은 내 안에 스며들었다. 어쩌다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지르려 할 때면 형은 "그건 네 역할이 아니야."라며 말렸다. 형은 항상 소리치는 역할이었고 난 감정을 억누르고 어머니를 위로하는 역할이었다. 자연스레 난 감정을 억누르며 하는 소통기술이 발달했다. 그렇게 부정적 감정을 내 안에 쌓는데 익숙해졌다. 쌓이고 쌓인 그 부정적 감정이 마음그릇을 넘치면 난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런 내가 싫었고 그렇게 만든 것이 술과 아버지 탓이라며 자랐다. 아버지가 싫었다. 내 감정표현을 막았던 형도 싫었고 의지할 때 없어 다가오는 어머니가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가식처럼위로하는 내 모습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술을 끊임없이 드시는 폭주(暴酒) 기관차. 형은 분노를 참지 않고 달리는 폭주(暴走) 기관차. 어머니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는 폭주(瀑注)기관차였다.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주(爆炷) 기관차였다. 4대의 서로 다른 폭주기관차는 가족이라는 철길 위를 위태롭게 달렸다.
외로운 인생길
외로운 부모님
그는 술을 마신 날이면 늘 같은 레퍼토리로 긴 연설을 한다.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날도 많아졌다. 아버지가 주역(酒驛)으로 타고 오는 기차 소리는 저 멀리서도 알 수 있다. 그 소리가 감지되면 쏜살같이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자는척했다. 행여나 쏜살같지 않아 밤새 연설을 들어야 할 때 나를 구해주시는 건 어머니였다. 겨우 빠져나와 방에 들어가면 이제 어머니가 밤새 연설을 들으셔야 한다. 그런 어머니를 구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종착역 도착
엔진을 끄고 기차를 멈췄다.
그의 30년 넘던 주역(酒驛)근무가 끝난 시점은 정년퇴직 시 받은 건강검진 때였다. 위암판정을 받으셨다. 이로써 길고도 길었던 두 근무지의 운행이 끝났다.사실 정년퇴직 후 주역(酒驛) 말뚝근무를 할까 봐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을 무렵 폐와 후두로 전이가 되었다.시간이 흘렀고병원에서 오늘 준비하셔야 한다는 연락에 모두가 아버지를 만나러 병실에 모였다. 이윽고 아버지는종착역에 도착했고 엔진을 끄고 기차를 멈췄다.
철길 위 낭만 시인
학창 시절 그는 7월의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무 그늘 아래서 시를 짓는다. 햇살이 쨍쨍 내리쬐고 있다. 운동장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성인이 되어서 그는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고 철로를 바라보며 시를 짓는다. 그는 늘 술 한 잔 하면 본인의 시집을 꺼내어 보여준다. 종이는 너무 낡어 흡사 불에 그을린 듯하다. 벽지였는지 창호지였는지 색도 있고 그림도 있다. 그와 반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대국을 하였던 그때가 그립다. 서로의 차례를 기다려주던 시간에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낭만 가득한 철길 위의 시인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이제야 감사하다.
아버지는 많은 시간 긴 터널에 계셨고 이틀에 한 번씩 선로를 바꿔가며 인생을 살았다. 그 인생길을 홀로 외롭게 걸었다. 그가 오랜 시간 철길 따라 수놓은 별자리는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이제와 그 별자리의 끝을 잇고 싶은 마음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에 알리고 싶어도 알리기 쉽지 않던 그때였다. 가족에게만이라도 알리고 싶어 했을지 모른다.시가 가득한 그의 작품집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법 두꺼웠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이 겨우 하나이다. 그것도 제목만 기억나고 내용은 모른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그의 작품제목을 세상에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