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대상은 개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왜 생겼는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옆집개한테 물려 시퍼런 멍을 본 기억은 있다. 이것이 내 기억의 전부다. 늘 궁금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단서를 하나 얻었다. 내가 개와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나는울면서 달리고 개는 날 따라잡으려고 달리고 어머니는 개를 막아내기 위해 달리고 모두가 달렸다고 한다. 달려라 하니가 나애리를 뒤에 두고 어머니를 향해 달리는 장면처럼 감동적이진 않다. 그래도 간절함이란 맥락에선 그것 못지않다. 아무튼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 개는 날 못 잡았다고 한다. 기억도 안나는 상황인데 1패가 더해진 느낌이다. 그땐 그래도 뛰면서 도망친 거 보면 몸이 굳지는 않았나 보다. 내가 기억하는 난 개가 적정거리 밖에 있을 땐 몸이 빨라지고 적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몸이 굳었다.
아! 봤다. 개! 봤다.
부러움
나도 되고 싶다.
여기는 [개! 봤다] 행성이다. 나는 개를 봤다 하면 숨어버리는 회피족이다. 이 행성엔 개를 봤다 하면 미소를 지으며 해피해피한 해피족도 함께 살고 있다. 회피족인 나에게 그들의 행복은 부럽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몇 해 전 "아! 봤다."아바타의 몸으로 나비족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봤는데 나는 언제쯤 해피족이 될 수 있을까?
지체함
도망칠 곳을 찾다.
10년을 함께 산 그녀와 연애 때 일이다. 그녀가 날 바래다준 적이 있다.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내렸다. 조수석 열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그녀와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적정거리 밖에 큰 개가 출현했고 난 개! 봤다. 그 찰나의 순간 난 경차 창문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183cm의 키가 국수면발 뽑 듯 차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날 보고 배꼽 빠지게 해피한 그녀에게 "이대로 헤어지기 싫어서 다시 탔어. 대화 더 하려고."라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창문을 다시 올리고 그 개가 지나갈 때까지 대화를 하였다. 해피족은 회피족의 이런 모습이 재미있나 보다.그런 그녀에게 더 지체할 수 없어 난 용기 내어 고백했다. 그리고 10년을 한결같았다. "다른 건 내가 다 지켜줄게. 개만 막아줘. 개한테선 날 보호해 줘." 개가 나타나면 한결같이 그녀를 개쪽으로 세운다. 해피족인 그녀는 내게 이 순간만큼 세상 든든하다. 개와 나의 거리가 적정거리 이상이면 난 누구보다 회피가 빨랐고 도망이 빨랐다. 개의 출현은 내가 행동의 지체함이 제일 없는 순간이었다. 다른 부분에선 느려터졌는데 말이다.
망막함
도망칠 곳이 없다.
그러나 적정거리 이상이라고 꼭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예 도망칠 곳이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직장 동료들과 M.T를 간 적이 있다. 숙소는 동해 해수욕장 근처였다.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우린 짐을 풀고 바다로 산책을 나가 사진도 찍고 밤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다. 제법 쌀쌀해져 준비해 온 음식을 먹기 위해 들어가기로 했다. 난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모래사장에서 조금 늦게 일어났다. 조금이란 시간이 얼마나 큰지 이날 깊게 생각하고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그로 인해 일행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먼저 들어간 일행들이 문안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봐야 할 뿐 난 더 이상 뒤따라 갈 수 없었다.
두려움
정면돌파가 어렵다.
도착했을 때부터 안 보였던 개가 눈앞에 보였다. 난 개! 봤다. 1층은 맥주집이었는데 이곳이 개의 주둔지였다. 개의 주둔지를 정면돌파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개의 종에 대해서 무지한 내가 봐도 명견이다. 줄이 안 묶인 채 으리으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찰랑거리는 백색 빛깔의 털은 맥주집주인이 건물주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이 명견은 그의 가족 구성원인 것 같았다. 어슬렁거리며 보초를 서고 있는 듯한 개는 "너만은 절대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난 정면돌파를 할 수 없어 보초경계가 느슨해지길 바라며 환청도 떨칠 겸 바다를 더 구경해야만 했다. 언제까지. 일행 중 누군가 전화를 걸고 날 엄호해 줄 때까지였다. 남자 동생이 나왔고 난 또 고백해야만 했다. 나의 고백에 그 역시 배꼽 빠지게 해피했다. 그가 보초견과 노는 동안 난 들어갈 수 있었다.
무력함
선택지가 없다.
친구집으로 놀러 가는 중이었다.빨리 도착하기 위해선 어두컴컴한지름길을 가로질러야 한다. 인적이 드문 그 길을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개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난 엄청난 내적갈등을 하였으나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발걸음을 돌려 큰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1차 굴욕감을 맛보며 큰길의 가로등길을 걸어갔다. 개는 그런 내 마음을 조롱하는 듯 계속 짖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나를 향한 비웃음처럼 들렸다. 내면에서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린 내면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건 너무 가깝게 들린다. 그 개가 어느새 내 등 뒤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난 벌벌 떨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난 개! 봤다. 마치 지뢰를 밟은 느낌이 이런 걸까. 발을 떼면 그대로 터질 것만 같다. 심장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를 보며 계속 짖는 개의 눈은 날 제압하였고 날 향한 공격준비마저 마친 듯했다. 이 공격을 막으려면 무기를 구해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발을 떼면 지뢰가 터진다.
절박함
이것마저 안되면 안 돼.
난 절박한 심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동전 몇 개를 만질 수 있었다. 개가 내 동작을 감지하는 순간 끝이다. 이건 마치 이등병 때 선임한테 들킬까 봐 초코파이 비닐을 소리 없이 뜯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엄지손가락의 튕김으로 동전을 던졌다. 영화 타짜의 개봉이 1년 후인 시기다. 난 그 명대사를 먼저 했어야 했다. "손은 눈보다 빨라야 한다." 내 손은 빨랐고 동전투척 소리에 개가 반응했다. 그 틈에 뒷걸음질 2~3 발자국을 쳤다. 됐다. 지뢰도 안 터졌다. 몇 번만 더 하면 피신할 수 있다. 그 시절엔 그래도 아직 거리에 피신처가 있었다. 사라져 가는 공중전화부스는 내게 다른 의미로도 쓰이던 공간이었다. 그렇게 두 번을 던졌다. 공중전화부스 앞에 도달했고 확실하게 들어가기 위해 100원을 한 번 더 던지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무엇도 막아낼 튼튼한 벙커가 되었다. 그러나 난 2차 굴욕감을 맛봐야 했다.
척함
나는 알고 있다.
내 생에 최고로 잘 쓴 돈이다. 앞으로도 300원으로 이 정도 가성비는 안 나올듯싶다. 100원짜리 하나가 이렇게 소중한지 이때 깨달았어야 한다. 그때 이 인적 드문 곳에 해피족이 나타났다. 설마 이 전투를 생생히 보고 있던 건 아니겠지.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이 절묘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난 수화기를 들었고 전화번호를 누르는 척하였다. 전화번호부도 보는 척했다. 역시 해피족이다. 개는 그 해피족을 따라갔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 그런데 해피족 입가에 미소가 보였던 듯하다.' 그렇게 3차 굴욕감은 남겨진 나의 몫이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며 슬금슬금 나왔다.
눈만 돌려도 부러운 거 천지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만 같다. 가는 방법은 모르겠고 갖고는 싶고 마음은 조급하다. 행동을 지체만 하다가 두려움은 커지고 자꾸 무너지는 무력한 내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한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절박한 심정까지 도달한다. 이것마저 안되면 안 돼. 이젠 선택지가 없다. 도망칠 곳이 없다. 망막함은 더욱더 커져만 간다. 정면돌파가 어려워 지름길을 찾지만 결국 되돌아와야 한다. 그런 나를 외부에서도 알게 되면 내가 더 무너질 것만 같다. 부러워하지 않는 척 지내려 한다. 그러나 결국 내 모습을 그 누구보다 내가 알고 있다. 결국 소제목을 열거하다 보니 내가 쓰고 내가 찔린다. 하긴 난 찔리고 찔리고 수천번 찔리긴 해야 한다.
타인을 부러워하며 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부러움이 나에게 긍정적 효과를 나게 할지 부정적 효과를 나게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