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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나도 맛있게 먹고 싶다.

#04. 모양

by 이별난 Jan 20. 2024

                        트라우마


나에게 존재하는 4가지

색, 맛, 모양, 대상으로 존재  


4. 모양

생각의 방향


★ 생각의 방향은 나를 이끌어간다.


전진-후진-후진


학창 시절 몇 개월 만에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있었다. 부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러움은 점점 커졌고 나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병원을 찾았다. "아니 어떻게 이 지경을 만들었지?"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나름 용기 내서 갔는데 두려움이 더 커졌다. 용기 내서 전진한 거리보다 더 멀리 후진하게 되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극심한 통증 때문에 치료를 받고 일부 떼어내고 나왔다. 그리고 그 병원은 다시 안 갔다.


그것을 보여주었다.


한동안 괜찮았다. 그러나 결국 다른 부위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젠 의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서 그 상태로 방치했다. 대신 통증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통증의 끝을 지나치고 나면 또 한동안 지낼만하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결국 통증은 다른 부위에 불붙듯 옮겨 붙었고 마음은 몸을 못 이겼다. 다른 병원을 찾았고 감추고 싶은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병원은 진료의 느낌이 따뜻했다. 난 그곳에서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치료를 계속했고 좋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입대했다. 치료는 잘 되었고 군생활 내내 문제없었다. 그런데 전역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곳에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심지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난 건강관리의 소홀함을 후회하며 사회로 나왔다.


맛있게 먹고 싶었다.


난 서서히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문제가 그래도 친구들 앞에선 괜찮았는데 이성 앞에선 괜찮지 않았다. 시커먼 색을 지우려 하얀색의 온갖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와 데이트 때마다 맛있게 먹고 싶었다. 혀만으로도 맛은 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 바라보면서 그녀의 입이 열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자신감 가져. 할 수 있다니까." 그러나 내 몸은 그걸 허락지 않는다. 그녀는 응원을 참 많이 해주었다. 노력해 주었던 그녀가 새삼 고맙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기긴 했었다.


하고 싶었다.


이 트라우마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전까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나이가 아니었는지 둔했던 건지 신경 쓴 기억조차 없다. 때문에 늘 환하게 웃지 못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그래서 이와 상관없이 환하게 웃는 친구들을 최고로 부러워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못 하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었다.


생각의 방향대로 흘러갔다.


지금은 내 다리를 보면 예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땐 휘어 보이고 못생겨 보였다. 돌아보니 생각의 한 끗 차이였던 것 같다. 같은 글을 보고 같은 그림을 봐도 저마다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고 결론이 다를 수 있다. 그때 내가 바라보는 방향은 내부적으론 나에 대한 불만족이었고 외부적으론 타인의 시선이었다. 그 방향은 시간이 흐른다고 바뀌지 않았다.  난 그 방향으로 계속 흘러갔다. 나의 트라우마는 휜 모양...... 이 모양이었다.


생각의 방향 전환

★ 생각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방향은 다리로 향했다.

탓과 합리화를 했다.


난 반바지를 입고 나간 적이 44년간 없었다. 누군가 내 뒷모습을 보는 게 싫었는데 내 다리까지 보여줘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모습을 누군가 뒤에서 보는 것이 싫었다. 사실 그때도 다리가 엄청 휘어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에 대한 불만족의 탓과 합리화가 조금 휜 다리로 향했다. 휜 것은 다리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불만족스러운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신을 탓하며 만든 트라우마였다.


강하게 많이 했다.

한 번을 해도 제대로 하자.


잇몸과 치아가 튼튼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더군다나 들쑥날쑥 불규칙적인 모양들로 칫솔질에 신경 써야 하는 구강구조였다. 더 신경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치질하는 짧은 몇 분의 시간을 소홀히 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칫솔질을 30초 안에 끝내왔다. 사실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양치질의 횟수와 강도였다. 한 번을 해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강하게 많이 하며 지우고 싶었던 건 치아에 묻은 음식물이 아니라 마음에 묻은 트라우마였다.


더 이상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홀히 한 시간들은 현실로 다가온다.


소홀히 한 시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로 다가왔다. 결국 치아는 심하게 망가지기 일쑤였다. 외부의 시선이 날 짓누르는 상황에서 내가 한 작업은 보수공사였다. 썩어서 깨지고 파인곳에 보수할 온갖 재료를 탐색했다. 치아 색과 최대한 비슷한 걸 찾아내려 했다.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종이를 보면 일단 난 색부터 봤다. 치아 색과 최대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깨져서 메우기 힘든 부분은 껌을 사용했다. 어금니 부분은 안 보이니 신경 안 썼다. 물론 껌을 살 때도 더 이상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색이 먼저였다.


공사를 했다.

기초공사에 신경 쓰자.


남들은 화장하고 머리를 만지고 패션을 신경 쓸 때 난 치아에 더 신경 썼다. 잘 보이려는 것보다 잘 안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껌은 필수품이었다. 여성이 손거울을 보듯 나는 화장실 거울을 보았다. 모임 중에 치아 보수공사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기초공사가 안된 상태에서 보수공사에만 전념했다. 기초공사가 제대로 안된 건축물이 보수공사만 한다고 안 무너질까.


쐈다.

자연스러운 순서를 연구하자.


환하게 안 웃는 법. 입을 최대한 안 벌리며 이야기하는 법. 치통을 참는 법에 대한 개인연구를 했었다. 모든 것이 역행이다. 기쁘면 환하게 웃고, 이야기할 때 입을 벌리고, 통증이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행인데 난 역행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치아는 나에게 많은 부분 영향을 주었다. 감추고 숨기려 하고 무엇보다 아펐다. 잘 씹질 못하니 영양소 흡수는 골고루 안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하기 힘든 방향으로 날아갔다. 마치 총구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고 쏜 총알이 같은 방향으로만 날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토록 나를 휘감고 있던 트라우마 중 하나인 신체 모양. 치아와 휜 오다리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었다. 생각의 방향을 그 당시 나로선 바꿀 수가 없었다. 나름 생각하고 이겨내려 하지만 결국 패배만 계속되었다.  난 치아를 입 안이라는 동굴 속에 가두고 못 나오게 하려 했다. 어쩌면 치아는 나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동굴 속에 갇힌 건 치아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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