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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원숭이 엉덩이는 改 빨개

#01. 색

by 이별난 Jan 23. 2024

                         트라우마


나에게 존재하는 4가지

색, 맛, 모양, 대상으로 존재  


1. 색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노래가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다.  


숨바꼭질

난 나란 사람의 색을 숨기고 싶어 했다. 마치 숨바꼭질 같다. 나의 트마우마인 색은 빨개지는 피부색이다.


초등학교

순수하게 숨고 싶었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3학년 반장 선거날이었다. "반장 추천할 사람 있어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 친구가 손을 들었다. 나를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난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새빨개졌다. 하기 싫어 울었고 기억의 다음 장소는 양호실(보건실)이었다. 양호실에서 선생님은 날 다독거리셨다. 이 일이 있어서일까. 3학년 때 유독 학교에 가기 싫어서 꼭꼭 숨으려고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수요일, 토요일이 4교시로 오전수업인 걸로 기억한다. 이 당시 토요일은 대한민국이 일하는 날이었다. 주 6일제 근무가 기본이었다. 아무튼 날들-수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날에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다. 가기 싫은 날이면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있던 동산에 올라 숨고 옆집에 숨어있기도 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옆집 문쯤 따는 건 쉬웠다. 재래식 화장실, 장독대, 창고...... 등 숨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다 숨었다. 어머니가 일터로 나가실 때까지 숨어있으면 된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가족은 어려운 술래들이 아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초등학생이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겠나. 숨는 족족 밟혔다. 더 큰 문제가 없던 거 보면  긴 시간 동안 한 행동은 아니었던 거 같다. 선생님은 상담 때 우는 날 다독이며 따뜻하게 감싸주셨다. 


중학교

마음을 숨기고 싶었다.


꼭! 꼭! 숨어라. 마음 보일라.


초등학생 때 욕 한번 했다가 형에게 세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욕을 못했다. 중학교를 입학해서 욕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들을 보면서 정체성의 혼란까지 왔다. '왜 나는 욕을 못하는 걸까?' 거울을 보며 연습해 보지만 잘 안된다. 어색한 표정에 큰 마음먹고 하는 말은 "야~띠발!"이었다. 욕을 연습하고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 못하는 걸  숨기려는 마음이 들킬까 봐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면 마음을 들킬 수 있다.


하굣길에 친구와 걸어간다. 어느 정도 걸으면 큰 길이 나오는데 그 지점서 많은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곳까지 나의 벗은 땅이었다. 남녀공학이었는데 그곳까지 여자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난 또 빨개질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좀 노는 언니'들은 내게 다가온다. 특유의 그 건들거리는 본새로 "승차권 있으면 좀 꿔주라."라고 말한다. 난 결정이 어렵지 않다. 얼른 주고 그 자리를 피했다. 더 있으면 내 빨개진 얼굴과 수줍은 모습을 몇 초라도 더 공개해야 하는 것이 더 싫었다.


고등학교

탓하면 숨길 수 있다고 착각했다.


꼭! 꼭! 숨어라. 탓으로 덮어줄게.


학창 시절 "오늘 27일이니까 27번 읽어보자!"라는 선생님 말씀에 얼굴이 빨개진다. 내 번호는 27번이었다. 이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일어나서 땀을 흘리며 읽었다. 그래서 내 번호 뒷자리가 있는 날이면 예습이 장난 아니었다. 그 전날부터 긴장했다. 그래도 날짜로 번호를 지정하시는 선생님이 낫다. 랜덤식 지정방식을 가지신 선생님 수업은 매일 예습해야 한다. 나의 과목 성적은 선생님의 지정 스타일에 달려있었다.  지정하는 선생님과 날짜와 내 번호를 탓했다.


날 건드리지 마. 너 때문이야.


주도적인 아이들이 접근해 오면 싫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한다는 것이다. 난 그 눈에 압도되는 기분이 싫어서 먼저 다가가지는 않았다. 당연히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했다. 다가와 말을 걸 때면 짜증 났다. 내가 짜증이 나느냐 안 나느냐는 타인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날 건드리지 마. 짜증 나는 건 너 때문이야. 회피를 넘어 탓이라는 마음은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성인

세상을 차단하고 숨어버렸다.

꼭! 꼭! 숨어라. 눈과 귀를 닫아줄게.


얼굴은 여전히 빨개졌다. 탓이라는 마음도 제법 빨개졌다. 수치심마저 느끼면  빨간 꽃들몸과 마음 만개하였다. 그로 인해 내가 한 행동들은  싫은 감정으로부터 회피와  사람에 대한 기피였다. 특히  잘 아는 사람들을 더 기피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빨개졌다 노래졌다 했다. 그걸  아는 친구 중 누군가얼굴색이 바나나처럼 노랄 때면 그냥 맛있게 장난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이런 시간이 바나나처럼 길었다. 길게 이어진 시간이란 기차는 빠르게 흘러갔고  비행기는 탔지만  활주로에 진입을 못한 채 길치처럼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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