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란 사람의 색을 숨기고 싶어 했다. 마치 숨바꼭질 같다. 나의트마우마인 색은 빨개지는 피부색이다.
초등학교
순수하게 숨고 싶었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3학년 반장 선거날이었다. "반장 추천할 사람 있어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 친구가 손을 들었다. 나를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난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새빨개졌다. 난 하기 싫어 울었고 기억의 다음 장소는양호실(보건실)이었다.양호실에서 선생님은 날 다독거리셨다.이 일이 있어서일까. 3학년 때 유독 학교에 가기 싫어서 꼭꼭 숨으려고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수요일, 토요일이 4교시로 오전수업인 걸로 기억한다. 이 당시 토요일은 대한민국이 일하는 날이었다. 주 6일제 근무가 기본이었다. 아무튼 이 날들-수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날에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다. 가기 싫은 날이면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있던 동산에 올라 숨고 옆집에 숨어있기도 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옆집 문쯤 따는 건 쉬웠다. 재래식 화장실, 장독대, 창고...... 등 숨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다 숨었다. 어머니가 일터로 나가실 때까지 숨어있으면 된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가족은 어려운 술래들이 아니었다.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초등학생이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겠나. 숨는 족족 밟혔다. 더 큰 문제가 없던 거 보면 긴 시간 동안 한 행동은 아니었던 거 같다. 선생님은상담 때우는 날 또 다독이며따뜻하게 감싸주셨다.
중학교
마음을 숨기고 싶었다.
꼭! 꼭! 숨어라. 마음 보일라.
초등학생 때 욕 한번 했다가 형에게 세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욕을 못했다. 중학교를 입학해서 욕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들을 보면서 정체성의 혼란까지 왔다. '왜 나는 욕을 못하는 걸까?' 거울을 보며 연습해 보지만 잘 안된다. 어색한 표정에 큰 마음먹고 하는 말은 "야~띠발!"이었다. 욕을 연습하고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 못하는 걸 숨기려는 마음이 들킬까 봐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면 마음을들킬 수 있다.
하굣길에 친구와 걸어간다. 어느 정도 걸으면 큰 길이 나오는데 그 지점서 많은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곳까지 나의 벗은 땅이었다. 남녀공학이었는데 그곳까지 여자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난 또 빨개질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좀 노는 언니'들은 내게 다가온다. 특유의 그 건들거리는 본새로 "승차권 있으면 좀 꿔주라."라고 말한다. 난 결정이 어렵지 않다. 얼른 주고 그 자리를 피했다. 더 있으면 내 빨개진 얼굴과 수줍은 모습을 몇 초라도 더 공개해야 하는 것이 더 싫었다.
고등학교
탓하면 숨길 수 있다고 착각했다.
꼭! 꼭! 숨어라. 탓으로 덮어줄게.
학창 시절 "오늘 27일이니까 27번 읽어보자!"라는 선생님 말씀에 얼굴이 빨개진다. 내 번호는 27번이었다. 이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일어나서 땀을 흘리며 읽었다. 그래서 내 번호 뒷자리가 있는 날이면 예습이 장난 아니었다. 그 전날부터 긴장했다. 그래도 날짜로 번호를 지정하시는 선생님이 낫다. 랜덤식 지정방식을 가지신 선생님 수업은 매일 예습해야 한다. 나의 과목 성적은 선생님의 지정 스타일에 달려있었다. 날 지정하는 선생님과 날짜와 내 번호를 탓했다.
날 건드리지 마. 너 때문이야.
주도적인 아이들이 접근해 오면 싫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한다는 것이다. 난 그 눈에 압도되는 기분이 싫어서 먼저 다가가지는않았다. 당연히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했다. 다가와 말을 걸 때면짜증 났다. 내가짜증이 나느냐 안 나느냐는타인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날 건드리지 마. 짜증 나는 건 너 때문이야. 회피를 넘어 탓이라는 마음은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성인
세상을 차단하고 숨어버렸다.
꼭! 꼭! 숨어라. 눈과 귀를 닫아줄게.
얼굴은 여전히 빨개졌다. 탓이라는 마음도 제법 빨개졌다.수치심마저 느끼면 이 빨간 꽃들은 몸과 마음에만개하였다. 그로 인해 내가 한 행동들은 싫은 감정으로부터 회피와 사람에 대한 기피였다.특히날 잘 아는 사람들을 더 기피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빨개졌다 노래졌다 했다. 그걸 아는 친구 중 누군가는 내 얼굴색이 바나나처럼 노랄 때면 그냥 맛있게 장난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이런 시간이 바나나처럼 길었다. 길게 이어진 시간이란 기차는 빠르게 흘러갔고 비행기는 탔지만활주로에 진입을 못한 채 길치처럼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