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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치 편-장내기능시험 13수

몸은 쓰면 발달한다.

by 이별난 Jan 07. 2024
운전면허시험

20대 중반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기억을 꺼내본다. 대한민국 운전면허증을 두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을 20년이 지난 지금 재해석하여본다.


1. 몸치 편- 장내기능시험

2. 길치 편- 도로주행시험

3. 인생 편- 마음변속시


1. 몸치 편


장내기능시험 13수


일단 하자.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이제 기능시험이다. 운전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친구에게 배웠다. 그땐 스틱차량이 더 많았기에 1종보통(스틱)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난 친구에게 기능시험 코스를 배워 본 적이 없다. 난 친구의 교육방법을 시대를 앞서간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직한 자신만의 교육철학이 있는 이 교육자는 "그냥 몰아봐."라며 자기차의 운전대를 바로 맡긴다. 그리고 그 예민한 클러치를 가진 "경차로 경사로를 후진으로 올라가야 한다."라고 한다. 난 "기능시험 코스는 언제 연습해?"라 묻지만 "운전은 자신감이야. 이렇게 하면 기능시험은 다 붙게 돼있어."라 한다. 기능시험은 따라오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바로 도로주행부터 교육시킨다.


2단-믿자.


'이 교육이 맞는 거야?'라며 반신반의 상태였다. 그러나 운전에 대해 무지상태인 나는 그의 교육과정을 따라갔다. 친구는 차에 관심이 많았다. 운전도 꽤 잘했다. 이미 그가 20대 중반까지 차를 몇 번 바꾸었는지 잠시 기억해 보니 그를 거쳐간 차가 기억나는 것만 6대이다. 차를 자주 바꾸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고차를 고르는 안목도 좋다. 난 그가 차 딜러에 상당히 어울려 보였다. 이런 점들은 어린 나를 얌전한 제자의 자세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난 스파르타의 신병이 된 마냥 그가 하는 데로 따라갔다.


3단-포기하지 말자.


후진으로 그 경사로를 경차로 오르기 연습을 하느라 시동을 그렇게 꺼뜨리는데도 친구는 왜 이리 신났던 걸까. "그런데 너도 집중해서 해야 했던 이 연습을 꼭 해야 했던 거냐? 꼭 그래야만 했냐?" 영화 해바라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 연습을 단 한 번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웬만한 경사여야지. 높아도 너무 높다. 그러나 신나 하는 친구를 보며 성공은 포기해도 시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4단-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기능시험 코스가 지금은 간소화되었지만 그 당시 코스는 몇 개 더 있었다. 상대평가시험도 아니다. 응시할 때마다 한 단계씩만 나아가도 (실수를 감안하더라도) 10번이면 족히 합격이다. 그러나 10번째 시험 당일 출발하자마자 언덕코스에서 떨어졌다. 친구는 클러치에 익숙해지도록 후진으로 언덕 오르기에 전념했었다. 그날 친구는 정신이 살짝 혼미해 보였다. 강인해 보이던 스파르타 출신도 결국 사람인가 보다. 언덕에서 떨어질지는 상상도 못 했을 친구야. 미안했다. 사실 친구가 크게 놓친 것이 있었다. 내가 몸치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몸으로 하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이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친구의 교육엔 감각이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난 운동감각이 안 좋다. 코스단계에 상관없이 불합격해서 차를 내려야 하는 곳은 어느 위치일지 예측불허였다. 기능코스시험장에 내가 탄 차의 타이어자국과 함께 내 발자국도 만만치 않게 찍혔다.


5단-몸은 쓰면 발달한다.


어느새 벌써 13번째 기능시험 날이다. 이젠 운전면허시험장이 이웃동네 같다. 직원분들 얼굴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한적한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즐길 줄 아는 여유까지 생겼다. 이쯤 되면 응시생 중 누구는 나를 직원으로 아는 건 아닌지 모른다. 그날도 '오늘은 어디서 떨어지려나.'라며 시험을 임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지? 내가 처음으로 가속구간까지 왔다. 이 구간은 이론상만 알 뿐 실전은 처음이다. 이 구간에서 감점이 안되면 마지막 평행주차 때 슬쩍 뒷바퀴만 들이밀고 나와도 된다. 가속구간에서 감점이 되면 평행주차를 성공해내야 한다. 가속구간이 끝났고 차감이 안되었다. 그동안 그래도 운전연습하면서 몸을 꾸준히 써서 그런지 내 운동감각이 조금은 발달했나?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예정대로 평행주차서 감점을 받고 13수 만에 기능시험을 합격했다.


고속주행-열정을 태워라.


친구가 더 기뻐했다. 그 당시 면허시험장까지 다니는 버스가 몇 대 없었다. 그나마 있는 버스의 배차간격도 넓었다. 그곳을 다 데려다준 친구다.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내주며 것도 모자라 그 엄청난 교육열정으로 가르쳐 준 것이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맙다. 오랜 시간  답답했을 텐데도 내가 기분 상할까 봐 짜증도 안 내며 배려해 주었다. (가끔 한숨은 쉬더라.) 그동안 친구는 열정이란 연료를 끊임없이 태워왔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남은 열정까지 다 태우며 고속주행의 기쁨을 만끽했다. (해방감인가?) 누가 보면 친구가 합격한 줄 알았을 거다. 고생했다.


그날 친구와 난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어찌 보면 우린 도로주행 위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능시험 합격한 이 날 면허증이 나온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을 해서 둘은 더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둘 다 놓치고 있었다. 아니 놓친 게 아니라 알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도로주행시험 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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