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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스 Sep 17. 2023

나의 공황장애 -4. 나의 공황의 출처는?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 이야기


나의 공황은 어디서 온 걸까?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날부터 너무 궁금했다.

공황장애는 스트레스의 역치를 뛰어넘게 될 때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황발작이 나타날 때마다 늘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고 매번 이유를 알 수 없이 찾아왔다. 당시 간호학도로써 나름 스스로를 되돌아보자고 생각하였으나 전혀 나를 찾지 못했다. 첫 공황발작을 떠올려 보았지만 이유는 계속 알 수 없었다.

정말 미치도록 궁금하였다. 나의 공황은 어디서 어떻게 오게 된 것이며 이유가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 건지.


증상은 알 수 없이 날로 악화되었고 그때마다 증상을 조절하기 위하여 약을 증량하였다.

그때는 학생이었고 정신과 약물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꽤 높은 용량의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한 건지 몰랐었다.

지금 그때의 약 용량을 되돌아보면 꽤나 높은 용량의 약을 먹어야 조절이 될 정도로 증상이 꽤나 중증이었다.

궁금해서 찾아본 약명과 약의 효능들은 나를 더 궁금하게 했다.

”이건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 환자가 먹는 거라고 나오는데… 왜 내가 이걸 먹는 거지? “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과 약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졸업과 취직



당시 함께 해주던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고 간호사로써 종합병원에 첫 취직도 하였다.

지역을 옮기게 되면서 다니던 정신의학과도 옮기게 되었다. 옮기게 된 정신의학과에서는 꽤 높은 용량으로 약을 유지한다고 하였다. 계속 외래 진료 때마다 증상이 도더라지지 않아 보이고 크게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는 나를 보더니 약을 감량하자고 하셨다.

감량하고 나는 다시 난리가 났다. 쉬는 날마다 증상이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다시 약을 증량했고 나는 살아가는 게 늘 힘들었다. 감량을 시도하지 않아 본 것은 아니다. 감량을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불안은 나를 찾아와 괴롭혔고 감량이라는 것을 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차라리 약을 유지하며 증상이 없는 것을 택하였고 공황발작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고 공황발작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단련되어 갔다.

공황발작이 와도 죽지 않는다는 것, 어차피 공황발작은 끝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평생 약을 달고 살자고 생각하여도 한 번씩 억울하기는 하였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


정신병원으로의 이직



나는 원래 심리학과에 진학하려 할 정도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생시절 정신간호학에 흥미가 많았다. 공황장애를 진단받기 전부터 정신이라는 분야로 더 많은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고 여전히 정신이라는 분야가 늘 궁금하고 신비로웠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 정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취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첫 취업은 큰 병원을 가서 배워야 한다는 말도 있어서 종합병원으로 취업을 하였다. 하지만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내내 정신병원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고 그렇게 나는 정신을 전문으로 하고 입원병동이 있는 정신병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새로웠고 재밌었다. 정신질환자를 대하면서 나도 같이 성장해 갔다. 공황장애 환자로써 사람들의 증상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환자들을 보며 이런 증상이 나타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되는 것도 있었다.


증상이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많으면 하루에 한 번, 적으면 2~3일에 한 번씩 찾아오던 공황발작은 줄어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불안이 살짝 올라오거나 증상이 한 달 동안 없기도 하였다. 더 이상 심한 공황발작은 겪지 않았으며 불안감이 조금 올라오는 정도로 유지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려고 했었다.


본가 쪽에서 다니던 정신건강의학과가 예고 없이 일주일 정도 휴무가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약이 떨어져 가는데 병원이 문을 닫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약 타는 병원을 내가 거주하던 곳 근처로 옮겼다. 이번에도 반복되게 담담해 보이고 증상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나를 보고는 약의 용량을 감량하자고 하셨다. 나도 증상이 줄어들어 감량을 시도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나는 또다시 극한의 공포를 맛보았다. 공황발작처럼 역치에 다다르게 되면 수분 안에 끝나는 정도가 아니었고 극한의 불안이 최소 1시간가량 나를 찾아왔고 불안과 우울이 동시에 날 괴롭혔다. 불안으로 인한 공포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해 다시 약을 소량 증량하고 증상이 조금 좋아졌다. 나는 더 이상 수분 안에 끝나는 공황발작을 겪지 않았으나 최소 1시간이 소요되어야 하는 극한의 공황발작을 겪게 되었다. 하루에 한 번은 아니었으나 잊을만하면 문득 찾아와 날 괴롭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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