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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스 Sep 17. 2023

나의 공황장애 -6. 돌아보는 나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공황의 시작



트리거를 이야기하려면 공황의 시작부터 돌아가야 한다.


앞서 ‘나의 공황장애 -1. 공황의 시작’에서 보았 듯이 나의 첫 공황발작은 중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우습게 말하자면 당시 나는 왕따인 듯 왕따 아닌 왕따 같은 나였다.

교우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다. 내 기억 속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쓸어내릴 때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곤 했다. 내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이 빠지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당시 남녀 합반이었고 여자인 친구들끼리 무리가 나누어졌으며 나는 소수 여자의 무리였다. 다수의 여자 무리는 내가 속해있던 소수의 여자무리를 싫어했다. 아마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하게 어떤 이유에서 내가 소수의 무리에 속해졌고 다른 다수의 아이들이 우리를 싫어하였던 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친구가 있었으니 왕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왕따취급을 당했다. 남자아이들은 다수의 여자아이들 편에 서서 우리를 같이 싫어했다. 들리도록 욕하기도 하고 대놓고 무시하였다. 친구들끼리 조별활동이 이뤄지면 그들은 우리를 배제하려고 하였다. 대놓고 우리랑 하기 싫어했고 하게 되면 투명인간 취급을 하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떠한 계기로 학급의 교우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으며 아예 아이들이 있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담임 선생님이 반에 들어오더니 모두 일어나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무리끼리 나누어 한쪽 벽으로 붙으라고 하셨다. 속으로 선생님이 무언가 조치를 취하려고 하시는 줄 알고 내심 기대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우더니 너희는 왜 그렇게 무리를 나누냐고 핀잔을 주었다. 맞은편에 서있던 다수의 무리 중 일부 아이들은 우리를 째려보았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핀잔을 주고는 서로 친하게 지내라는 식으로 뻔한 어른의 잔소리 한번 하고 그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첫 공황발작이 나타났다. 당시 장난이 많던 남자아이는 내가 공황발작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며 나를 조롱하였고 당시 나를 싫어하던 다수의 여자아이 무리들과 남자아이들의 일부는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모습과 나의 일부를 더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황장애를 진단받게 되었을 때 어렴풋이 첫 공황발작을 떠올렸다. 아마 학창 시절의 경험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공황장애가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처음엔 학창 시절의 왕따의 경험이 나의 트리거인줄 알고 살았다. 계속 부인하고 부정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공황발작이 시작되던 그때 당시에 원인이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1학년 이후로 나는 왕따가 아니었고 공황장애가 심해진 대학생 시절에 나는 교우관계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를 알아봐야 했다. 나는 삼 남매이자 둘째이다. 2살 위인 오빠가 있으며 6살 어린 동생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부모님은 같이 사업을 하셔서 늘 집에 늦게 들어오셨다. 오빠는 나보다 사춘기가 먼저 찾아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없었다. 어린 동생은 중학생 때까지는 내가 데리고 놀았던 것 같다. 동생은 유난히 나를 좋아했고 나를 잘 따랐다. 부모님이 늦은 시간에 집에 오셔서 그때까지 동생이랑 투닥거리면서 지냈던 거로 기억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애교가 많던 아버지는 늘 어머니에게 과한 애교를 부렸고 어머니는 과한 애정공세에 귀찮아했던 것 같다. 나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학창 시절의 부모님은 우리를 키워야 하기에 돈을 벌어야 했고 그로 인해 부재일 때가 많았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화목한 편이었고 누구 한 명이 삐뚤어지지도 않았다.


나의 성격



성격에 관한 검사를 통한 나는 꽤나 강점이 많은 성격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둔했고 한 가지 생각에 빠져 곪는 성격도 아니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직장을 벗어나면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고 일상생활에 집중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여도 그 누군가가 하였던 말에 상처받아 되뇌지 않았고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다. 미움받을 용기도 나는 꽤 많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재 약을 타는 정신의학과의 의사 선생님도 나에게 강점이 많은 성격이라고 하시며 상황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의아해하셨다. 건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쯤되면 중학생 시절 외에는 트리거에 대해 발견할 만한 포인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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