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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일찐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진 우리 동생임.

by 반항녀

https://brunch.co.kr/@lfemme-revolte/172



우리 동생은 일찐이 아니다.

둘 다 성인이 되고 동생한테 ‘일찐 시절 얘기 좀 해봐’하면 자기는 일찐이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 일찐은 아니어도 잘 나가긴 했다.

* 누구를 괴롭혔다면 아마 글을 쓰지 못 했을 거에요. 그런 일은 없었고 그저 어감을 위해 ‘일찐’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중학생이던 시절 나는 인터넷소설(내 남자친구는 일찐짱, 도레미파솔라시도, 온새미로 등)을 읽으며 일찐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충분히 학생으로서 한번쯤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초등학생이던 시절과 다르게 급격하게 내 지위가 올랐다고 착각을 하게 된다. 지위가 아니라 계급이 맞겠다. 괜히 얼마 전까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교복을 입고 들어가서 그네를 탄다거나, 등나무 밑에 앉아있는다거나.


(나는 그러다가 삥을 뜯겼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교복 입는 게 마냥 좋아 그저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학급에 초등학생일 때보다 견고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의 무리가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바니바니 당근당근’을 하던 무리가 되었다. ‘하지만’은 약간의 기대감이라도 있을 때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초록색 개구리 마스크를 멋이랍시고 쓰고 다니고 에뛰드에서 사은품으로 준 공주거울을 아이템으로 들고 다녔다. 그 공주거울은 ’잘 나가는’ 친구가 빌려가 놓고 돌려주지 않았다.

나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두루두루 잘 지낸 편이었고 나의 중학교 무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반항녀와 친구들

아무튼 나의 순수한 어린 시절을 말한 이유는 이제 밝혀진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2살 터울인 우리 동생이 입학했다. 우리 동생은 지금도 패션센스가 뛰어나고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는데 마침 그 학년에 ‘잘 나가게 될’ 친구들이 동생의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일진 친구들이 군집해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학년 별로 그 위치가 바뀌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관찰력이 뛰어나니까)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 기준으로는 1학년은 교문 밖 등나무 벤치, 2학년은 운동장 등나무 벤치, 3학년은 거리낄 게 없고 인사를 받는 입장이니 ‘학교 중앙현관, 조례대 위’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하교를 하고 있는데 우리 동생이 보였다. 교문 밖 등나무 아래에. 뭐랄까. 이때 아마 같이 있는 친구한테 ’ 저기 저 아이가 내 동생이야.‘라고 걱정하는 척 자랑을 했다. 이 얼마나 비굴한가.

(치마도 나보다 짧았다.)


이런 동생은 어느새 ’양언니‘도 생기고 ’양동생‘도 생겼다. 그 당시 ’잘 나가는 ‘ 친구들의 문화였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정통 친언니라는 생각에 또 속으로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괜히 자랑스러움과 부러움, 그리고 걱정이 섞여 나름 모범생이었던 나는 동생을 쥐 잡듯이 잡았다.


그러던 중 동생이 한 학년 위, 나보다는 한 학년 아래의 유~명한 남학생을 사귀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 ‘알’을 썼던 우리는 아껴가며 통화를 해야 했기에 동생은 집전화로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 매점에서 그 남학생을 봤더라면 새치기를 당해도 그저 꼴아보기로 복수를 다했다며 만족했겠지만, ’우리‘동생의 언니라는 피로 이어진 계급을 등에 없고 그 전화기를 뺏어 내동댕이를 쳤다.

“헤어지라고!!”라고 외쳤던가.


동생이 탈선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동생과 맞짱이 가능했기에 아마 조금의 몸싸움이 있었던 것도 같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내가 너무 지질한 아이였던 것 같은데 나 찌질이 아니었다.


아빠는 나보고 아직도 찌질이라 부르는데 마음만은.. 잘 나간다. 집 밖을 잘 나간다.


각설하고, 이 앞 에피소드처럼 동생에게 이런 글을 써도 되냐고 허락을 받으며 살짝의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이야기.


일찐 남자친구의 자전거 뽀뽀.


인터넷 소설에 나올 것만 같은 얘기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잘 나가는‘ 친구들은 남자친구를 사귈 때도 ’잘 나가는‘ 친구들을 사귀는데 그 때 다른 잘 나가는 친구로 바뀌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어쨌든 동생이 하굣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잘 나가는 ‘ 남자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뽀뽀를 했다고 한다.


쓰고 보니 별게 없는데 만약 벚꽃 효과를 넣거나 가로등 효과를 넣으면 인터넷 소설 같다.


부러웠다. 남자친구 한 명 사귀기도 어려웠던 나에게 일찐 남자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뽀뽀를 하다니. 근데 아무래도 만들어진 기억이 아닐까 싶은데, 그 거리와 강도를 어찌 조절하나.


아 이게 왜 이렇게 짧을까. 분명 동생한테 들을 땐 이 내용이 글의 포인트였다.


뭐 어쨌든 나는 동생을 부러워했다.

치마도 예쁘게 어디 가서 잘 줄여와서 내가 외출할 일이 있을 땐 동생 치마를 빌려다가 입었고, 동생은 그 반대로 복장점검(?)이 있을 때 아마 내 치마를 빌리러 왔었을 거다.


동생은 당시 유행하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다녔는데 나는 동생이 안 입는 날을 노려서 빌려 입곤 했다.


구차해 보이지만 구차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동생의 치마는 예쁘게 줄여서 입기만해도 자신감이 생겼다. 고등학생때는.. 나도 애써 남자친구를 만들고 했기에. 그 치마를 입고 말이다.


아 그리고 그때의 동생 친구들은 솔직히 나보다 잘 나가는 듯하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거. 여전히 알고 지내는 동생 친구들아 그때 노는 아이들로 오해해서 미안해.


숨은 이야기가 있지만 동생이 서른이 넘어가면 그때 풀어야겠다. 아직 비공개로 해달라고 한다(*˘˘*)


적다보니 동생보다 ‘내 찌질의 역사’가 추가 된듯하지만 이해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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