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건 고통이다.

나 이제 사랑하지 않을래~

by 반항녀

최근, 맥락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게 많을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말을

각기 다른 두어사람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생명을 사랑하게 되면 언젠가는 상실을 겪게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자주 아프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무생물도 상실하면 아플 수는 있겠지만,

‘더 챙겨주지 못한 아픔’은 오직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만 느껴지니까

그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아마 큰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였을 거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걸 가까이서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나이 들어버린 엄마, 아빠, 할아버지를 보며 앞의 글처럼 그분들의 ‘시간’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걱정했던 때도 있었고.

그 시간을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에서 오는 아픔.


우리 집 막내 밍구(강아지),

그리고 아가들 카뮈와 깜순이(고양이)를 기르면서는

또 다른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 아이들보다 오래 살게 된다면

결국 그들의 죽음을 먼저 마주하게 될 텐데.

이 아이들은 원하는 걸 말을 하지 못하는데 내가 잘해주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어쩌지.


‘왜 내가 이런 아픔을 데려왔을까’ 하며

몇 번이나 밤에 울적한 마음으로 후회한 적이 있다.


최근 내 거취가 변하면서

이 감정은 또 다른 방향으로 번져갔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이제는 ‘물리적으로’ 멀어진다는 것.

경기도와 부산을 오가던 삶에서

이제 한 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그쪽에 있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하게 된 상황.

그분들에게 받았던 따뜻함과, 내가 보냈던 애정이

‘이젠 더 이상 직접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슬픔이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몇 개월 만에 만나는 것이었지만,

‘언젠가 볼 수 있어’와 ‘다시는 보기 어려울지도 몰라’는

천지차이니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넓힐수록, 나에게 고통이 커지는구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사소한 이별과 상실조차

나에겐 생각보다 큰 슬픔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약한 걸까?

상실이 두려워 스스로 관계를 줄이려는 건가?

이건 자발적인 고립인가?

나는 내 감정을 명확히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부정적인 내가 소모되는 감정 앞에서는 회피하려는 겁쟁이 같았다.


요즘 이런 대화를 종종 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인간관계를 넓히지 않으려고 해.

넓힐수록 결국 나만 아프더라. 넌 어떻게 생각해?”


하지만 그 대화의 끝은 항상 비슷하다.

“그래도 난 사람이 좋아.

사람이 밉고, 상처받고. 그래도

누군가가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주면 꼬리 흔들며 다가가는 강아지마냥 나는 또 마음을 열게 되더라.”

그렇게, 말하자면 나는 참 강아지 같은 인간이다.

그런 내 모습이 가끔은 싫다.

경계심을 가지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또 정을 주고,

사람을 알아가고,

또 아프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좋아하는 사람이나 동물을 늘리지 않겠다는

다짐은 결국 말뿐이 된다.

그럼에도 그 말만큼은, 진심이다.


나는 상실로 고통을 겪고 싶지 않고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 아프고 싶지 않다.


인간의 삶이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