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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Jan 23. 2022

나무

내가 늘 바라는 것은 

다정함, 다감함, 그와 더불어 냉철함과 단호함.


사람에 대하여 다정하고 다감해야 하며,

사안에 대해서는 냉철하고 단호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물, 나무. 영하로 떨어져 손이 곱아지는 추운 겨울에도 나무에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진다. 고목일수록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결, 세월이 만든 흔적들에 대한 정서적 공명에 있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가만히 느껴보다가 손끝으로도 만져보게 되는 나무의 결은  반질반질한 촉감에 더불어 다정하고 다감하다.


죽어서도 여전히 다정다감한 온기를 전해주는 나무의 생은 어땠을까. 흙, 바람, 비, 숲. 나무의 몸에, 결에 손을 부비며, 나무의 생을 상상해보노라니 마른 찬바람 속에서도 젖은 흙냄새가 스며들었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빛을 받아 수액에 저장하여 순환하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다정하다는 것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 더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며,

다감하다는 것은 좋은 것을 좋다고 느끼는 가운데 다른 결의 세밀함도 살피는 것이다.

다정다감함은 더 나아가 '나의 자아'를 '타인의 자아'를 향해 열어두는 것이다. 서로 다른 자아가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라는 말이 완성될 것이다. 사람의 생에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니 다정하고 다감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흙, 햇빛과 바람, 비, 그리고 나무들과 주고받고, 순환하기를 반복하는 나무처럼 사람은 사람들과 공명하며 서로 지탱한다.


사람의 생에서, 다정하고 다감한 데다 단호함과 냉철함을 두루 갖출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냉철함이라고 한다. 냉철한 판단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단호해야 한다. 단호함은 감정을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며, 말하지 않고 갈 길을 가는 태도이다.


오래도록 온기를 보내주는 나무에 손을 대고 나무의 뿌리를 가늠해본다. 발아한 뒤로 뿌리는 줄기와 이파리까지 도달하는 생의 순환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흙을 향해 뻗어가는 단호함 속에 생의 순환에 유익한 것을 선택하는 냉철함은 나무의 오랜 생뿐만 아니라 사물로서의 본질을 지탱한다.


돈암동의 흥천사는 지어진지 600년이 넘었다. 세월을 모두 이기지는 못하여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 다시 지은 것이지만, 이미 수십 년은 족히 지나 인간의 짧은 생이 감히 새롭다 할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위패를 보신 이 에 들러 기둥의 나무에 손을 댄 채 세월을 가늠하고, 오래된 온기에 기대 숨을 쉬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물, 나무에 손을 대고 오래된 나무의 다정함과 다감함에 안도하며, 오랜 세월을 견디어 본질을 잃지 않은 단호함과 냉철함에 머리를 숙인다.


(덧붙여)

나무에 오래도록 손을 댄 채, 나무의 다정함과 다감함을 느끼고, 나무의 생을 지탱한 냉철함과 단호함에 대해 경외감을 가진 시간을 뒤로하고 몸을 돌려 나오면 절은 도시의 숲에서 그저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작아진다. 삶과 생활이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려면 손을 댈 정도로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내 생활의 시간은 대개 어디에 닿지 않고 떠돈다. 차에서 내려 걷거나,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두는 시간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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