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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진 Oct 22. 2023

스물아홉 살의 신입생

    준비할 시간은 길어야 3개월 정도. 당시 레슨 선생님의 독려와 입시를 보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엄포를 놓은 여자친구의 등쌀에 떠밀려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한 번에 합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서울예대나 동아방송예술대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기 때문에 나는 다음 해 입시를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입시가 바로 코앞이던 겨울이 됐을 때 나는 여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놓여있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뒤숭숭한데 설상가상 여자친구와의 관계마저 틀어지니 마음을 잡기가 몹시 어려웠다. 다행히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회복됐지만 준비 기간은 턱없이 짧았다. 동아방송예술대의 입시 요강이었던 자작곡은 시험일을 불과 3일을 남겨두고 완성했고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다.


    아무런 기대 없던 1차 시험의 결과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합격했다는 통보와 함께 이틀 뒤에 있을 2차 시험에 대한 공지가 뜬 것이다. 2차 시험을 위해 또 다른 자작곡이 필요했는데 합격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다른 입시생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했을 자작곡을 하루 만에 작곡하고 외우려니 정말이지 기적이 필요했다. 그런데 기적은 정말 일어났다! 심사위원들이 만학도의 도전을 높이 샀을까, 아니면 어떤 절박함이라도 봤을까? 아직도 의문이지만 나는 당당하게 정시에 합격했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실용음악과(당시 영상음악과)의 강의실과 복도는 어딜 가나 에너지와 열정이 넘쳐났다. 새 학기 합격의 기쁨과 감사함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1학년의 나는 그런 분위기에 오히려 한껏 위축돼 있었다. 나는 10학번 동기와 많게는 열 살 정도 차이가 났고 동급생뿐만 아니라 선배들도 나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때때로 복도에서 마주치면 나를 강사로 오해하고 인사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실제 당시 나와 동년배의 강사들이 강의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학교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나를 숨 쉬게 했다. 20대 후반까지 ‘번듯한 직장’ 없이 방황하다 보니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주변인들이 늘어가던 때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연습실은 24시간 개방됐고 실용음악과 전공생들의 음악에 대한 열의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연습, 공연 준비, 잼 등으로 학교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또 가까운 동기들의 자취방에 모여 서로 작업한 곡을 들으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좋은 교수님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재능과 열정 넘치는 학생들끼리 복닥거리며 성장했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멋진 동문들을 떠올리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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