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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을 넘기기 힘듭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이놈의 병원.. 불을 확!! 싸질러 버려!!

by 캠강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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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다섯,

종갓집 종부가 되었을 때

남편의 누나는 임신 중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올케가 될 어린 여자를 살뜰히 챙겨줬다.


결혼을 처음 해본 나에게

결혼을 해본 남편의 누나는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자상했다.


해가 넘어가고, 형님이 첫 손주를 시부모님께 안기는 날

어르신은 매우 행복해 보이셨다.


이제 내 나이는 스물여섯.

주위에서 아이 소식을 궁금해했다.

결혼 전부터 어린 여자의 남편은 신혼생활을 몇 년 하고

아이는 천천히 낳자고 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생각이 달랐다.

친정엄마도 애가 타다며 계속 임신여부를 물었다.

" 요즘 세상이 너희들 맘대로 되는 줄 아니?

아기 낳아야지 한다고 바로 생기는 줄 알아??

불임 부부도 얼마나 많은데, 형님도 아들을 낳았는데, 너도 준비해야지!!"


협박에 가까운 잔소리.. 잔소리다..


그해 나는 엄마가 되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응애~~"

여자아기였다.


시부모님은 괜찮다. 고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은 죄송하다고 했다.

첫 아이가 딸이면 둘짼 자연스럽게 성별이 다르게 태어난다고 했다.

바로 준비하면 남자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신혼집을 떠나 남편 직장 5분 거리로 이사를 했다.

시부모님 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로 꽤 가까웠다.

살던 동네를 떠나 친구도, 아무도 없는 서울로 이사를 왔다.


태어난 아기는 '껌 딱지였다'

엄마 껌 딱지였다.

아무것도 못하게 엄마한테 딱 붙어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계속 눈치가 보였다.

괜찮다고 했지만 자꾸 눈물이 났다..


한 번도 이렇게 집에 오래 있었던 적이 없던 활발한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내비게이션'을 홈쇼핑으로 몰래 구입해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자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엄마한테 갔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기 한 시간 전엔 꼭 집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출이었다.

아기가 1살이 되었을 때 난, 3월에 대학교 입학을 했다..

하지만 둘째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이길 수 없어 1학기를 다니고, 그만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결정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혼을 통해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내겐 남편의 부모님이 곁에 계셨다.


'아들 낳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고 했다.

비슷한 책을 2권.. 3권.. 선물 받고, 열심히 읽었다.

남자아이는 알칼리성 음식? 여자아이는 산성음식?

남자아이를 임신하려면 고기, 감자, 깻잎?...

성별을 알려주는 기간까지 정말 열심히 먹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시부모님은 '알칼리수 정수기'로 바꾸셨다.

남편은 매일 등산에서 약수를 받아오듯 퇴근길에 시댁에서 '알칼리수'를 생수병에 담아왔다.


드디어 기다리던 임신이 되고, 12주? 13주쯤 되었을 때 여자는 찜찜했다.

의사에게

"할 수 있는 검사 다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주 더 지났을 때쯤 여자는 " 검사 더 해주세요. 기형아 검사도 또 있다던데"라고 말했다.

여자의 말을 들은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 산모님! 보세요. 피검사 괜찮죠?!! 초음파 괜찮잖아요?? 저번에 한 검사가 기형아 검사도 같이 한 거예요. "

"그래도.. 기분이 좀 그래요.. 검사 더 없나요? 양수 검사라도 해주세요."


진찰실을 나와 예약을 잡아주는 간호사에게도 이야기했다.

" 위험한데, 왜 자꾸 하려고 하세요? 큰 아이도 건강하게 출산하셨으니 괜찮으실 거예요."

"그래도 좀 찝찝해요.. 검사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어요"

" 양수 검사는 시기가 있어서 지금은 못해요."


"아.. 네"


시기가 있다..?

그럼 그 시기가 되면 알려주겠지?

그다음 달에도 검사 이야기는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닌가?'


몇 번을 더 이야기했지만 간호사는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고 다음 진료 때 양수검사를 물어보니 기간이 지나서 검사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 제가 계속 말했잖아요.. 검사 더하고 싶다고.."

왜 그런지 너무 불안했다..


주위엔선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했다.

산모가 자꾸 그렇게 불안해하면 태아도 불안해한다고 걱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병원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 원장님도 유명하고, 병원도 잘한다고 소문났는데, 왜 이렇게 유별나게 그러니?"라고 했다.

병원 홈페이지, 병원 관련 카페 등을 검색하며 병원 오진, 기타 평판을 조사했다.

안 좋은 이야기도 많았다.


다시 " 병원 옮기고 싶어요."라는 말을 아이를 낳기 하루 전까지 계속 말했다..

"내일 아이가 태어나는데?.."


차가운 분만실에 혼자 들어가 누웠다.

3월 말이지만 너무 추웠다.

산모를 위해 난방도 안트나?

너무 추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다리도 떨리고, 손도 떨리고, 이빨이 '따닥따닥'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나만 분만실에 눕혀놓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보이진 않지만 내 입술은 이미 파랗게 질려있을 것 같았다.

제발 따뜻하게 난방 좀...

한 시간 같은 1분이 계속 흐르고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누군가가 들어왔다.

너무 춥다고 말했다.

난방을 했다고 했는지, 하겠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떴을 땐 남편은 내 옆에 없었다.

순간 속상했다.

'어디 간 거야.. 아들 낳았는데?'


" 아이가 숨을 안 쉬고 상태가 안 좋아서.. 응급차 타고 아기랑 큰 병원 중환자실로 갔어.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정말 괜찮은.. 줄..


저녁이 되자 초췌하게 병실로 들어온 남편은

"괜찮아?"라고 자상하게 물었다.

난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아이도 괜찮다고 말했다.


퇴원을 하루 남기고,

땀을 닦으며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아이가 많이 안 좋아.. 아프게 태어났어."

"??..."

" 너.. 아기 낳고, 쇼크 올까 봐 말하지 말라고 해서.."

" 응??.. 무슨.."

" 오빠가.. 괜찮다고 했는데?"


내 말을 듣고 있던 엄마는

" 권서방이... 아이 태어난 날.. 의사 선생님 말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기절했었어...

너.. 내일 퇴원해야 하니까.. 정신 차려야 할 것 같아서..

.. 아기 보러 가야지.. 너.. 놀랄까 봐.. 정신 줄 놓으면 안 되니까.. "


" 이 병원!! 다!! 돌팔이야.. 병원장도 도망 다니느라 얼굴도 못 보고,

원장실에도 없고!! 지금 소송 준비 중이니까.."

라며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셨다.

엄마도 시아버님도.. 시어머님도 계속 우셨다..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밤새 잠도 오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있는 산부인과 병원과 아이가 있는 대형 병원 중환자실을 오가느라 몇 일사이 살이 많이 빠지고, 수염은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머리도 언제 감았는지.. 씻기는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밤새 울다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병원비 수납하라고 걸려온 원무가 직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 병원장은 도망가고,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없고!! 내가 검사 다 해달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잖아요!!

양수검사해 달랬더니 기간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도 해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해 달라고.. 또 했더니.. 기간이 지났다고.. 했잖아요!! 그때 검사했으면 됐잖아요!!"

목이 매여 말도 잘 안 나오고, 간신히 나온 목소리는 쉰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오후까지 병원비 수납을 한 후 병실을 비워달라는 말만 했다.

" 이 놈의 병원!!! 내가!! 불!! 싸!! 질!! 러!! 버릴 거야.!!"

" 이 놈의 병원!!! 내가!! 불!! 싸!! 질!! 러!! 버릴 거라고.!!"

정말!!

정말로!!!

불 질러 버리고 나도 죽고 싶었다.


"00 생각도 해야지.. 00가 엄마 기다리잖아.. 힘들어도.. 엄마가 정신 차려야지.."

수납을 하고 병실로 들어온 남편이 날 안았다..


" 내가!!.. 내가!!.. 이 병원 싫다고 했잖아!! 이 병원 ㅅ ㅣ ㅀ 다고 계속 말했잖아!!"

엉엉 우는 나를 안고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촉은 이렇게 무섭다..

내가..

이 병원은 싫다고..

말했다..

계속 말했다..


아니.. 그냥 다른 병원 가지 그랬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착한 며느리였고, 어르신들 말을 잘 듣고 싶었다..

남편은 착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었다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도

착한 며느리라고 생각하셨으면 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며느리..

그래서 다른 병원을 가고 싶었지만..

말 안 듣는 며느리라고 할까 무서워 다른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건데? 이미 낳았는데 어떻게 할 건데! "

어르신이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 아.. 이 죽을 놈의 착한 병..'

남편을 따라 차를 타고 아들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지랄도 제대로 못한 내가 너무 한심해 눈물이 났다.

착하고 착한 내가 한심해서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였다.

한 번도 어른들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는 착한 나였다.


소독가운을 입고 머리에 파란색 모자를 쓰고 아기가 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배가 움푹 페이게 호흡을 하는 아기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얇고 긴 호스가 입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 호스가 떨어질까 아기의 가녀린 볼엔 큰 테이프가 붙였있었다.

몸엔 링거줄이 붙어 있었고, 여기저기 몸 체크하는 줄도 붙어 있었다.

얼굴보다 더 큰 검은색 무언가에 눈이 가려 있었고, 아기는 제대로 울지도 못한 채 숨만 거칠게 쉬고 있었다.


아이를 보면서 울고 있는 우리 앞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왔다..

" 100일을 넘기기 힘듭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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