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절반의 마라톤

2024 서울레이스 하프마라톤 도전기

by 심바

2019년 첫 5km 마라톤 대회를 나갔으니

햇수로 치면 벌써 6년 차 마라토너다.

하지만 처음이 그때였던 것일 뿐.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 건 올해다.

월 마일리지(달린 거리)를 의식하며 늘려가려고 노력한다. 야외에서 뛸 수 없는 날씨면 헬스장으로 가 러닝머신 위를 열심히 달린다.

지금 나의 SNS피드는 페이스 올리는 법과 존 2 러닝, 코호흡, 운동화 세일, 준비운동드릴, 미드풋과 힐풋 등 온갖 달리기 관련 정보들이 도배 중.

이제는 꿈속에서도 마라톤을 한다.

이 정도면 궁극의 몰입상태 아닐까.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나에겐 10km가 최대 거리라고 생각했다.

기록이 당최 당겨지지 않기 때문다.

가장 빠른 기록이 53분대.

좀 달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40분 대도 가뿐히 뛰던데,

(물론 입상권은 30분 중 후반 대더라만 너무나 남의 일 같아서. 하하하)

나는 50분 이내에 10km를 뛰는 것도 되질 않았으니

10km 이상의 종목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코로나 시절 골프나 테니스를 하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어서라고도 하고, 기안 84가 '나 혼자 산다'에서 마라톤을 뛰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라고도 한다.
늘어난 러닝크루들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대회 접수.

메이저급 대회는 접수 당일에 티켓이 매진되는 것이 흔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규모 있는 대회들의 접수자체가 어려워졌다.

개인적으로 너무 소규모의 대회는 교통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로가 좁거나 병목현상이 심해 일정 규모 이상의 대회들을 나가는 편인데, 접수 당일 서버가 멈춰 몇 차례 씩 연기되는 일도 다반사.

이제는 '선신청 후고민'이다.

내가 뛸 수 있고 없고는 신청이 되고 난 후에 생각할 일.

10월 13일에 있었던 서울레이스 대회가 그랬다.

10km와 하프코스밖에 없는 대회인데 서울의 도심을 가로질러 달릴 수 있는 대회라 인기가 많다. 10km만 뛰기에는 아까울 거라는 크루원들의 말에 귀가 팔랑팔랑..

신청 당일 생애 처음으로 하프 코스를 접수했고,

손 떨리며 결제까지 성공했다.
"아싸, 성공~~~!"
이전에 한 번도 10km 이상의 거리를 뛰어본 적이 없었지만 성공의 기쁨에 걱정 따윈 날려버렸다, 한 30분 동안은.

뒤통수가 서늘하게 걱정이 밀려왔다.
10km도 허덕이며 뛰는 내가 과연 하프를 뛸 수 있을까...?


걱정하면 거리가 늘어나나 뭐.

훈련 돌입이다.
그렇게 한 여름 하프대비 연습이 시작되었다.

올여름, 정말 덥지 않았던가.

가만히 있어도 내가 녹아내릴 것 같은 무더위, 달리기 연습은 고행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연 뛰어낼 수 있을지 나 스스로도 궁금했기에 하프정도까지의 거리는 연습을 해야 했다.

6분이 약간 넘는 페이스로 20킬로를 뛴 것이 마지막 연습. 그리고 대회 당일이 되었다.


날씨마저 빛이 났던 그날, 10월이지만 해는 아직 강렬했다. 크루에서 10km뿐만 아니라 하프도 같이 나간 사람들이 꽤 있었고, 새벽에 테이핑을 야무지게 받고 살짝 몸을 푼 후 출발 대기선으로 향했다.
5, 4, 3, 2, 1, 출발!

목표는 2시간 언더.

1시간 59분 59초 안에만 들어오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프 거리는 21.0975km, 2시간 이내로 들어오려면 1km를 5분 40초 이내의 페이스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하는 페이스로 쭉 달리라는 조언에 5 40을 목표로 계속 시계를 보며 달려 나갔다.


서울레이스 대회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주로라는 것도 있지만, 경사가 크게 없어 거의 평평한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개인 최고기록(PB)을 많이들 낼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것도 있다.

초반에 경복궁 쪽을 향하는 약간의 업힐과 그만큼의 다운힐을 빼면 경사가 크게 없어 페이스를 유지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하프가 처음인 내가 목표한 페이스대로 달리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1시간 57분 29초. 페이스 5분 34초.




!!!!!
10km를 뛰던 페이스로 내가 하프를 뛰어내다니!
목표했던 페이스와 목표했던 총 기록 모두를 달성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워치상 거리가 좀 더 남아 마지막 전력질주도 하지 못하고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제대로 봤더라면 기록을 조금 더 당길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동시에, '내년 대회 꼭 신청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도 흠칫 놀랐다.

이래서 모두들 하나같이 걱정하는 나에게 '하프 무조건 뛸 수 있어~'라고 말했구나.






5km가 힘들지 않은 법 알려드릴까요?
10km를 뛰면 됩니다. 하하하하하.

내년엔 하프마라톤이 힘들지 않도록 풀마라톤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2025년 가을 42.195km 달리기!
코끝 시릴 겨울과 내년 벚꽃 날릴 봄, 태양이 작열할 여름을 즐겁게 달리고 단풍이 예쁠 가을에 풀마라톤을 뛰어보겠습니다.
달려라, 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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