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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처 Apr 04. 2023

털실고양이

겨울 해는 보푸라기가 많다

털실 꾸러미처럼 천천히 굴러간다


고양이가 양지바른 곳에서 털을 고른다

잠의 동굴 깊숙이 굴러들어온 해를 쫒아다니며 장난을 친다

쥐를 잡았다 놓았다 놀리는 것처럼


두 알의 개복숭아를 달고 꼬리를 바짝 세우고 걸어온다

꼬리로 물음표를 만든다

고양이 왈츠를 들으며 피아노 위에서 잠든다


햇살은 하늘을 할퀸 자국

앞발을 핥는 입가에 향기로운 수술이 돋는다

털실과 먼지, 정적으로 이루어진 고양이

눈 속 깊은 곳으로 분자 구름이 떠다닌다


고양이가 털실 목도리를 두르고 학교에 간다

햇살을 발톱에 걸고 뛰어다닌다

풀어낸 햇살로 그새 새끼고양이를 한 마리 짠다


스웨터를 풀어 바지를 짜고 바지를 풀어 장갑을 짜고 나를 풀어 아이를 짜고

닳고 닳도록 코를 걸어 떠내려간 내력

아이가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매듭과 문양의 이야기를 듣는다

잠이 많은 겨울 해가 눈꺼풀 속 괴발개발 찍어놓은 발자국

낚아챌까 말까 낚아챌까 말까 고양이는 해를 훌쩍 낚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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