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간마을 광평리에서 만나는 "한라산 아래 첫 마을"입니다.
한때 "제주도 한달살이"가 유행했던 때를 기억할 텐데, 나 또한 애월면 유수암리에 있는 제주 농가에서 한 달을 보내며 그 대열에 합류했었다. 그 기간 동안 빨빨거리며 제주시와 제주 서남부를 돌아다녔는데, 이번 글부터 당분간 당시에 만났던 제주도의 맛집들 시리즈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의 '제주메밀 비비작작면'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이는 이곳의 '제주메밀 비비작작면'이 내가 지금까지 맛본 국수들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국수와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경우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기국수와 보말(바다고동) 칼국수야. 두 곳의 차이점은 고기국수집들이 거의 예외 없이 멸치국수나 비빔국수를 함께 내는 것과 달리, 보말칼국수집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보통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제주에는 아예 이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국수집들이 몇몇 있는데, 오늘 이야기하는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 그곳이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 음식점 이름으로는 참 독특한 이름인데, 이런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이곳이 제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인 광평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의 위치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 숲이 우거진 중산간마을에 있는 관계로 보다시피 주변엔 골프장들만 잔뜩 들어서 있고, 우리가 이정표로 삼을 만한 이렇다 할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아, 제주의 아름다운 7대 건축물로 선정된 "방주교회"가 근처에 있기는 한데, 아래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 이런 음식점을 내보겠다는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은 이곳 주민 15분 정도가 '영농조합 법인'을 시작하며 '메밀 마을 공동체'를 열었던 때로부터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분들은 음식점과 카페를 직접 운영하기로 결정했고, 그리하여 제주메밀 Food Restaurant인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게 ㅌ태어난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의 영업일과 영업시간은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를.
내가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제주도가 고향인 고등학교 동창 덕분이라고 하더래도,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알고 이 산간마을까지 찾아들 오시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손님은 엄청 많고, 그러다 보니 국수집 건물 또한 너무도 멀쩡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 때라도 되면 대기 손님이 차고도 넘치는데, 그 때문에 손님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물론 식사 후 자연스레 차가 생각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하여 국수를 파는 곳 바로 앞에 카페도 마련해 두었다.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이곳이 워낙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대기하는 동안을 활용하여 잠시 다른 곳을 잠시 다녀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말하자면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 건물이 카페.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서니 레스토랑 입구에 메밀을 제분하는 기계가 보이던데, 그냥 곁눈질을 한번 하고 자리에 안내하는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주방은 반쯤 가려져 있지만, 보이는 곳만 봐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저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 테이블에 옮아 올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식판 위에 메뉴판이 놓여 있다. 잠시 메뉴판을 보면 고민하는 척을 하기는 했지만, "제주메밀 비비작작면"과 "제주메밀 비빔냉면"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메밀 전과 메밀만두 중 무엇을 하나 더 추가할까를 고민했을 뿐인데, 결론은 메밀 전이었다.
주문을 하면 먼저 따끈한 메밀차가 제공되는데, 통상적으로 우리가 맛보는 메밀차에 비해 훨씬 더 맑다. 아, 빛깔은 (사진보다) 훨씬 노란빛이 강하다.
주문을 한 잠시 후, 제일 먼저 '메밀 전'이 서비스됐다. 식감이 약간 뻣뻣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100% 메밀로 만들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맛!!
그리고 이어서 문제의 "비비작작면"이 서비스되었는데, 우선 보다시피 비주얼 자체가 예술이야. 각종 제철 나물의 어우러짐이 맛 이전에 눈을 즐겁게 한다. 허어, 어찌하여 이리도 아름답게 서비스를 하는 것인지? 나를 "이 환상의 비주얼을 어찌 비비작작하여 해칠 수 있을 것인고?"라는 고민에 빠져들게 만들려고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아, '비비작작'이란 말은 어린이가 천진난만하게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는 모양을 일컫는 제주방언이라고.
자, 이젠 맛을 볼 차례인데, 그를 위해서는 함께 제공되는 들기름과 특제 소스를 크게 휘둘러 넣고서는 '비비작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 끝내주는 비주얼을 망쳐버리는 일을 해야 될 시간이다. 어쩔 수 없는 일, 눈을 질끈 감고 비비작작을 감행했다. 그리고는 각종 야채와 면을 함께 돌돌 말아 입속에 집어넣는 순간, 입안에서 그야말로 맛의 향연이 벌어진다. 상큼, 담백, 깔끔, 건강함 등을 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이 맛이라니... "말로 형용할 수 없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제주메밀 비빔냉면 또한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 다 먹고 나서도 텁텁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을 보면 - 인공감미료를 별로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제주메밀 비빔냉면, 기분 좋은 매콤함... 이 정도로 표현해 두기로 한다.
환상의 식사를 마치고 나와 둘러보니, 저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훌륭한 사진 액자가 될 것 같은 곳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초지를 보는 순간, 문득 서른다섯 짧은 삼을 살다 간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은 어느새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맛집이 된 듯하다. 때문에 식사시간에는 그야말로 대기줄이 길게 이어져서, 번호표를 뽑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경우 멍 때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요즘 들어 유명세를 타면서 거의 관굉지화 되다시피 해진 방주교회를 구경하고 오는 것인데, 막상 자리를 떠서 방주교회를 다녀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 대기줄이 급격히 줄어 자신의 순서를 놓치게 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달간의 제주살이 동안 이곳을 세 번씩이나 찾았는데, 두 번은 점심시간 대에 찾아 1시간 가까이 기다려 식사를 했다. 하여 세 번째는 일부러 오후 3시를 넘긴 시간에 이곳을 찾았는데, 그 시간에도 보다시피 주차장에는 손님들이 몰고 온 차들이 그득하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나를 위한 테이블이 딱 한 곳 비어 있었다.
아, 고백해 둘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1시를 조금 지나 이미 충분한 양의 점심식사를 한 다음에 찾았는데도 불구하고, 제주메밀 비비작작면을 그야말로 폭풍흡입을 하였다는 것이다. 폭풍흡입을 거역할 수 없게 만드는 맛. 제주메밀 비비작작면이다. 한마디로 이곳을 평하자면, 절대 강추!! 아, 제주의 또 하나의 핫플레이스인 오설록 티하우스로부터 그리 멀지 않으니 연계해서 다녀보기를 적극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