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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그와 일요일의 그녀

진아 09

by 융 Jung

진아 09

진아의 아버지 재후는 모친이 남긴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형 재석을 위하여 더 많은 몫을 기꺼이 내주었다. 당시 재석의 사업은 무너질 지경이었고, 장남의 체면도 걸려 있었기에 재후는 자신의 몫을 줄여서라도 형이 가세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어머니가 남긴 땅과 건물은 단순히 금전적 가치가 아니라, 앞으로 세대를 이어갈 기반이었다. 형과 반씩 나누어 갖는 것은 아무리 따져보아도 형평에 맞지 않았다.

재후는 곰곰이 따져본 끝에 먼저 입을 열었다. “형은 건물을 가져가시고, 저는 땅을 맡겠습니다.” 겉으로는 공정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속은 달랐다. 시세로만 따지면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땅은 향후 도로 공사나 개발로 가치가 뛰어오를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형수가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형수의 의심은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 재후가 도로 공사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법인을 내세워 땅을 사들여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꿍꿍이처럼 비쳤다.

진아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이 낯설었다. 늘 농담을 던지고 웃음을 보이던 아버지가, 요즘 들어서는 말수가 줄고 무겁게만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진아는 평소와 달리 어두운 얼굴로 침묵하는 아버지를 그저 어머니를 잃은 슬픔 탓이라 여겼다. 진아의 그 의젓한 모습이 대견스러워 재후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진아는 그 손길을 느끼며, 자신이 오히려 아빠를 위로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지숙의 마음은 달랐다. 그녀는 늘 아주버님과 형님께 예의를 차리되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지키며 살아왔다. 허울 좋은 말은 없었지만 최소한의 교양과 선은 지켰다. 그런데 남편이 꺼낸 재산 분할 이야기가 잘못 번지면 두 형제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 전체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지숙은 그 점이 두려웠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건물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여길만했다. 땅은 언젠가 개발될 수도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고, 반면에 건물은 당장의 월세 수입을 가져다줄 터였다. 지숙은 속으로, 차라리 땅을 양보하고 건물을 택하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저렇게 땅에 집착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점점 남편이 못마땅해졌다. 애초에 재후가 “형은 건물을, 나는 땅을”이라고 선을 긋지 않았다면 형님 부부도 굳이 땅을 두고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마디가 불필요한 갈등을 키운 셈이었다.


결국 지숙은 결심을 하고 진아를 방으로 올려 보낸 다음 남편과 마주 앉았다. 둘은 널찍한 소파에서 서로를 대각선으로 바라보고 앉았다. 거실에는 무겁고 불안한 긴장감이 돌았다. 곧 가사도우미가 묵직하고 커다란 얼음덩이가 담긴 위스키 두 잔을 소파 앞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얼음이 두꺼운 잔에 부딪히며 낮게 울리는 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지숙이 먼저 잔을 잡으며 말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태도로 말씀하세요. 아주버님이 땅을 원하신다면 땅을 가지시라고.”

재후는 불쾌한 기색으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원, 당신은 왜 그래?”

지숙은 담담히 잔을 기울였다.

“중요한 건,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주버님은 분명 건물을 택하실 거예요.”

“어째서?”

“당신이 태연하면 아주버님은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아, 진아 재후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건물이 낫다고 보나 보네, 하고요. 그러니 꼭 당신이 먼저 연락을 드려서는 태연하게 말씀드려야 해요.”

재후는 망설이며 위스키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형이 정말 땅을 고르면 어쩌려고?”

지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버님은 그러실 수도 있죠. 하지만 형님은 분명 그렇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당신 속에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할 테니까. 그분은 당장의 월세 수입이 더 솔깃한 걸요. 일부러 지인들을 데려가 자랑이라도 하고 싶을 테지요.”


재후는 말없이 잔 속의 얼음을 굴렸다. 얼음이 잔 속에서 구르며 부딪히는 묵직한 소리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아내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러나 자존심과 계산이 얽혀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재후는 반신반의하며 위스키를 비웠다.

몇 달 뒤, 결과는 지숙의 예상대로였다. 재석 부부는 건물을 선택했다. 지숙의 아주버님이 아니라 형님이 마지막에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재후는 자신이 바라던 땅을 손에 넣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아내의 치밀한 눈썰미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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